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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에 희망이…/정성환 천주교연희동성당 신부(아침을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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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에 희망이…/정성환 천주교연희동성당 신부(아침을열며)

입력
1997.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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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목민심서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성인의 시대가 멀어져 그 말씀도 사라져가서 어두워졌다. 오늘날의 사목들은 오직 이익을 얻는데만 급급하여 목민하는 길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들어 구렁텅이로 줄지어 빠져 들어가 가득 메우는데도 사목들은 자신들을 살찌우고 있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국가가 존립하고 정치가 행하여지는 목적은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국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국민이 못살게 된다면 국가나 정치는 곧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이번 대선은 이를 입증해 주었다. 따라서 국민들은 새 정부에 대해 기대하는 바도 그만큼 클 것이다. 그 동안의 정치 결과가 가져온 산재해 있는 문제들도 풀어야 하거니와 국민들의 여망도 이루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이 새 정부에게 무거운 십자가로 지워졌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새 정부만이 혼자서 짊어지기에는 무거워 보인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치할 때만이 이 십자가는 무거운 형틀이 아닌 부활의 영광을 가져오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때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지혜는 「가난한 삶」이리라. 성서가 말하는 「가난」은 경제적 사회적 상태만을 뜻하지 않고, 인간의 정신적 성향과 마음의 자세까지도 포함한다. 따라서 성서는 가난이 지니는 정신적 부를 우리에게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상선벌악하시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불완전한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물질적 풍요가 하느님께 대한 충성에 대한 보상의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하여 가난을 멸시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이스라엘 현자들도 가난은 태만과 방탕의 결과임을 지적하고, 비참한 생활로 빠지게 하는 나태함을 혹독히 비난했다. 또한 성서는 대부분의 가난한 자들이 운명의 희생물이거나 인간의 불의 때문에 생겨난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인간의 불의로는 상행위에서의 파렴치한 부정, 토지의 독점, 약속 불이행, 권력 남용, 정의 자체의 타락 등이다. 전자는 이러한 의미의 물질적 가난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그동안 경제 제일주의 정책 속에서 끊임없이 강조돼왔으며, 후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해 오던 많은 이들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그 결과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빈곤함을 가져오는 현상이 나타났고, 여전히 불의의 상태는 계속되어 국민들은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첫 설교를 『가난한 자들은 행복하다』는 말씀으로 시작함으로써, 가난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축성된 가난한 자들의 메시아로 나타나셨다. 그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메시아 자신이 또한 가난한 자였다. 베들레헴 마굿간에서의 탄생, 나자렛의 목수 아들로서의 생활, 공생활을 통한 가난한 삶, 십자가를 짊어짐, 그리고 완전히 헐벗음에 이르기까지 그분은 가난하셨다. 그리고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을 당신에게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마음이 양순하고 겸손한, 가난한 마음」 때문이었다.

이 가난은 행복을 주는 정신적 가난이다. 이 가난은 신뢰하는 믿음과 인내하는 겸손으로 자신을 개방한다. 그런데 물질적 가난은 이 마음의 가난을 얻기 위한 확실한 길이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가난해지심으로써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2고린 8:9)을 본받아야 한다.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주기 위해 가난한 메시아로 오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한다. 이 선물은 가난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희망을 간직한 이들에게 주어진다. 여러가지로 어려운 이 시점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대통령, 새 정부를 통해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께서 하신 기도를.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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