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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따뜻함 잃지 말자(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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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따뜻함 잃지 말자(사설)

입력
1997.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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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캐럴조차 들리지 않아 고요하다 못해 적막할 뿐인 성탄절과 세모를 맞고 있다. 엊그제 새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 차기 대통령이 당선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경제전선에 뛰어들었어도 아직 희망은 멀게 느껴질 뿐, 당장 우리를 옥조여 오는 것은 환율폭등과 물가인상으로 인한 바닥과 끝을 모를 불안감 뿐이다. 우리가 그 동안 무엇을 잘못했던가. 우리의 원죄는 무엇이기에 이처럼 가혹한 계절을 맞고 있는가.분명 우리에게는 올챙이 적을 생각 못하는 졸부의 교만함에 가려 현실과 미래를 직시하고 대비하는 자세와 안목을 잃고 있었다. 반성만 하기엔 사태가 너무 절박하지만, 지금의 경제위기는 차입에 의존했던 재벌체제의 경영악화가 기업부도사태와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국제신인도의 추락으로 연결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현실은 괴롭지만 여기서 우리는 일제의 질곡과 6·25의 전화를 벗어나자마자 4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저력있는 민족이라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폐허나 다름없는 처지에서 피와 땀을 함께 흘리며 빛나는 경제성장을 이루고도, 어느 순간에 자만에 빠져 방만한 경제운영이라는 함정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우리가 국민소득 1만달러 수준이면서도 2만∼3만달러인 양 행세했던 것을 진정 몰랐단 말인가.

이제 뒤늦게 쓰디쓴 자책과 반성을 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때로는 낭만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던 세계 경제질서가 얼마나 냉혹하고 현실적인가를 뼈 아프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탄에 빠지거나 절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1930년대에 사상 유례가 없던 대공황기를 맞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이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국민을 격려하면서 수렁을 벗어났던 선례를 생각하며 우리의 쓰라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보릿고개」라는 말과 1960∼70년대의 가난했던 시절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그 때의 절대적 궁핍을 헤쳐나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 매었던가도 잘 알고 있다. 아직은 불안하고 혼미해 보인다. 그러나 가난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이 우리의 참담한 현실을 헤쳐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정부는 열과 성을 다해 외국과 협상하고, 경제 다시 일으키는 궁리로 밤을 지새고 또 지새야 한다. 국민을 격려하고 설득하면서 희생과 땀도 요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수범해야 한다.

우리 또한 모두가 한마음으로 따뜻함과 여유를 잃지 말고 내핍과 근검에 동참함으로써 이윽고 이 혹한의 계절을 이겨내자.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은 고통받는 이웃이 턱없이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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