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법해석차이 따를필요 없어”/헌재와 쳇바퀴식 대립 가능성도헌법재판소가 24일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결정한 것은 사법사상 처음있는 일로 법조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한 권리침해가 있는 경우 헌법소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법원의 재판은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법원의 재판마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면 「3심제」로 돼 있는 현재의 사법제도가 사실상 「4심제」가 된다는 우려 때문에 만들어진 조항이다.
그러나 헌재의 이번 한정위헌 결정은 그동안 절대권위를 인정받아 오던 대법원 판결도 헌재의 심리대상이 된다는 「충격적」 내용을 담고있다. 헌재는 파문을 우려한 듯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한 법원의 재판에 한해 헌법소원을 인정한다』고 그 범위를 최소화했다.
대법원은 헌재 결정이 선고되자 『경제위기 및 정권교체로 미묘한 시기인 만큼 적극 대응하지 않겠다』면서도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정식 위헌결정이 아닌 변형결정에 불과하며 이는 법률해석상의 문제이므로 법원 판결에 기속력이 없다』고 밝혀 헌재의 결정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헌재의 한정위헌, 한정합헌 등 변형결정에 배치되는 판결을 한 적이 없었으나 이번 헌법소원의 원인이 된 구 소득세법 관련 조항에 대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실질과세의 원칙과 조세형평에 비추어 잘못된 법해석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과 국세청이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청구인은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낼 수 밖에 없으며, 이럴 경우 재차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헌재에서 또 위헌결정이 나오는 등 다람쥐 쳇바퀴돌기식의 권한다툼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결정에 앞서 헌재는 지난해 4월 「법원의 판결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다」는 헌법재판소법의 위헌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청문회형식의 공개변론을 갖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헌재 결정을 무시한 대법원 판결을 묵과할 경우 헌재의 존립기반이 위태로워진다는 위기의식과 헌법기관으로서의 자존심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간에 법해석을 둘러싸고 정면 대립함으로써 앞으로 법조계 전체에 상당한 파장과 논란이 예상된다.<현상엽 기자>현상엽>
◎문제의 본안 소송/11억대 양도차익낸 땅거래 중과세에/한정위헌결정들어 소송 대법서 패소
이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대법원 판결은 이길범 전 의원이 동작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양도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이다.
이씨는 87년 2월 서울 관악구 남현동 소재 임야 9천9백여㎡를 부인명의로 3억9천만원에 사들였다가 2년뒤인 89년 3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합계 15억원에 팔았다. 국세청은 이 거래가 구 소득세법 시행령이 정하는 투기거래로 판정, 기준시가가 아닌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차익 11억여원에 대해 양도세 7억3천6백여만원과 방위세 1억4천7백여만원 등 모두 8억8천여만원을 부과했다. 이씨는 과세의 근거가 된 구 소득세법 관련규정에 대한 95년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들어 소송을 냈으나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법원 판결에 기속력이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구 소득세법 제23조4항은 「(양도세액 산정시) 양도가액은 양도당시의 기준시가에 의한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는 실거래가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시행령에는 투기성 거래의 경우 실거래가로 세액을 산정하도록 돼있다. 헌재는 이에 대해 『실거래가에 의한 세액이 기준시가에 의한 세액보다 많을 경우 실거래가로 과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한정위헌 결정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기준시가로 산정하면 이씨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된다』면서 『실질과세 원칙과 과세관행, 조세정의에 비추어 헌재의 95년 결정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밝혔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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