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극복위해 필요하다면 현대통령 조기퇴임이나 당선자 실질국정운영을 진지하게 검토할만 하다”97년 세모에 우리의 가슴은 날씨만큼이나 시리고 춥다. 나라는 부도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신은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다. 임기말의 권력누수에 공직자의 심한 동요와 국민의 강한 불신까지 겹친 가운데 현 정부는 국가위기를 타개할 의지도 능력도 잃은 상태에 있다. 홍역 같은 대통령선거는 국민을 동서로 갈라 놓았고, 이념과 노선이 다름에도 선거승리만을 위해 급조된 각 정파의 연합이나 정당들은 벌써 권력투쟁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는 위기에 빠져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고 정치판의 지도는 어지럽기만 하다.
기업의 도산과 인수합병, 대량실업, 물가폭등이 눈앞에 닥쳐있는 판에 대안 없는 대통령의 사과와 해묵은 「국민대화합」의 외침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기대통령을 뽑아 놓았지만 사태는 심각하고, 현 정부의 임기만료일은 내년 2월24일로 두 달이나 남아 있다. 나라가 심각한 불안정 속에 있기 때문에 차기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 상황에서 현 정부에 내년 2월24일까지 나라를 맡겨놓을 수 있느냐 하는 여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조기이양이니 차기대통령 당선자에 의한 조기 조각이니 하는 것도 이런 사태의 대응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까지 차기대통령당선자는 현 대통령의 임기전 퇴임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고, 국무위원들의 국정보고와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정부인수위원회등을 통해 국정운영에 적극 협력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의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현재 여론 가운데 부각되고 있는 의견은 대체로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김대통령이 조기에 퇴임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에는 헌법 제71조에 따라 국무총리의 권한대행체제가 생기는데 현재와 같은 국가위기를 국무총리대행 체제로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대통령 조기 퇴임직후 국무총리의 권한대행시간을 최대한 짧게 하고 즉시 차기대통령이 취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의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헌법 제68조 제2항, 제71조의 해석상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우리나라의 대외적인 위상과 체면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고 헌정사상 불행한 선례를 남기게 되겠지만 최후의 방안으로 검토해둘 필요는 있다.
둘째, 차기대통령 취임 전의 조기조각방안이다. 이 경우 조각은 형식상 현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신중히 고려할 사항들이 있다. 지금 정치권의 상황상 DJP연합의 합의내용과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국회동의를 고려할 때 국무총리의 임명이 손쉬운 일이 아니며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내각의 구성이 졸속으로 행해질 위험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또 논공행상과 연고주의, 자리나눠먹기로 나라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던 YS정부가 인재등용에 실패하여 나라를 망친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철저한 인물검증 절차를 거쳐야 할 차기정부의 조각은 실로 중요하다. 차기 대통령당선자가 국무회의를 운영하는 것도 아닌 이런 방식은 잘못될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할 우려가 있고 새 각료들의 부처 장악도 어려워 국정운영에 도리어 혼란을 가중시킬 위험도 있다.
셋째, 현 정부하에서 차기대통령당선자가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방안이다. 이런 것은 현재의 협력체제보다 더 적극적으로 당선자가 국정운영에 관여하는 형태이다.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YS와 DJ간에 깊은 신뢰와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방식을 여러 형태로 구체적으로 구상할 수 있다.
작금의 국가위난 사태를 고려할 때 상황의 전개에 따라 첫째와 셋째 방안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방안은 많은 부작용이 있으므로 택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방안은 협력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위기관리를 위한 비상정부 체제를 만드는 것인데 이 경우 대통령 당선자는 정부인수시스템을 확대구축하여 정부인수작업을 하는 일과 동시에 부처별 정책팀을 구성하여 현 정부와 공동의 책임을 지고 국정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 이런 형태의 국정운영에서는 필요하면 해당 장관과 실무자도 교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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