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민족 대단결’ 책무 남았다/고은·시인(아침을 열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민족 대단결’ 책무 남았다/고은·시인(아침을 열며)

입력
1997.12.24 00:00
0 0

97년이 저물었다. 무엇 하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시간에 대한 인간의 한계인 듯하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다. 그러므로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온다함은 정녕 인간의 의지 밖의 일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거의 예상하기 어려웠던 큰 사건을 체험하였다. 역사의 면목이 여실한 바였다.하나는 위기이다. 세계로부터 경이의 대상이던 한국경제의 축제가 여지없이 파국을 맞았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그럴 리 없다는 태도였다가 이제 그 누구도 등돌리지 못하는 경제의 사선 위에 서있게 된 것이다. 서민이나 재벌이나 할 것 없이.

지난날 한강 위의 다리가 잘려나갔을 때에도 그 뒤 한강 이남의 분홍빛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에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를 본질적으로 깨닫지 못한 채 잊혀지기 쉬운 반성으로 넘겼다. 여전히 밤은 흥청댔으며 낮 또한 때 아니게 큰 소리만이 여기저기 쩌렁거렸다.

그러다가 이번의 지진을 맞아 생존의 영역이 쪼개지고 망가져 그 최대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그런 확인을 할 겨를도 사라진 채 오로지 절대의존의 신세로 되고 만 것이다. 어쩌면 한국전쟁시절의 그런 구호대상 국가 제1호로 돌아간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꿀꿀이죽을 먹고 구호물자를 걸치던 때를 기억해야 하는가. 또 하나는 이같은 위기에 대한 기회이다.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사건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은 물론 세계가 깜짝 놀라면서도 그것이 그동안 쌓여온 놀라움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는 비록 단정이기는 하나 건국 및 정부수립 50주년을 앞두고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극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사회는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누군가가 있다」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그 「누군가」의 시대가 도래한 역사적인 변화가 이번의 결말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최근 근대화내재론 등의 발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근대화 진행과 성장에는 반드시 공포정치가 전제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못한다. 아니 근대화나 현대성 자체에 대한 어떤 자기부정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액면 그대로가 우리 자신의 초상인지 모른다. 이렇게 개발과 성장의 이면에서 깊숙하게 자리잡은 부패는 그것 자체가 성장의 다른 얼굴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모순이 아니다. 여기에서 얼씨구 절씨구하고 딱 들어맞는 춤을 추며 바로 무지와 무능의 정치적 굿판을 차린 것이 지난 5년의 문민정부였다.

오랜 기득권은 그 자체의 진정한 이익을 위해서라도 오만하지 않은 자율적 검증과 성찰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런 스스로의 심판은 아예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이제까지의 방자한 작태였다. 특권층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시대는 새로운 시대를 낳아야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왕의 정치세력들이 헤쳐모여를 거듭하였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이합집산의 게젤샤프트(이익사회) 이상의 것이다. 그야말로 정치사회적 해체의 현장이었고 새로운 개념의 「복잡성」과도 닿지 않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생물적인 새로운 활동자체가 오랫동안 깊어진 지역간의 갈등을 수평이동으로 해소시킨 것이기 보다 그것은 그것대로 남겨진 민족적 우수인 것이다.

이제 어느 지역이건 이대로는 안된다. 이대로 두면 그것은 내일의 통일시대에까지도 최악의 영향으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한표를 던진 것으로 국민의 책무를 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거일 당일을 지나면 역사의 객체로 돌아간다는 뜻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김영삼정권을 만들어낸 선거권자 대부분이 이제와서 그 정권을 입에 거품을 물고 규탄하는 것도 그 자신에게 돌아갈 책임을 회피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치의식을 길러 우리가 국민전체로서의 역할을 가질 수 있는 정부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김대중 당선자에게 한 표를 던진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그 한 표의 운명에 더 이상 집착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 철학적인 친화력을 꽃피우는 민족 대단결의 연대를 통해서 새로운 세기의 세계사에 유려하게 진입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