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하게 풀어쓴 ‘서울묵시록’/신성과 인간성… 그리고 구원/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현란하게 도입된 소설속 영상/추리소설식 전개 박진감 더해최창학(56)씨는 「실존의 고고학」을 탐구하는 소설가로 불린다. 68년 당시 한국소설에서는 충격적인 형식실험을 시도한 중편 「창」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등단한 이후, 100여편의 작품에서 우리 시대의 모습을 묵시록적인 작품세계에 담아 보여주었다. 그가 오랜 침묵을 거쳐 17년만에 장편 「아우슈비츠」(문학동네 발행)를 발표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다루는 것은 이제 구원의 문제다. 실존의 고고학을 넘어선 「신과 인간의 고고학」이랄까. 작가 자신의 말처럼 『소설가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진지해야 할 형식실험이 제스처만 요란한 치기스런 유희로 전락해 유행하는』 요즘 소설계에서 드문 주제 선택이다.
독자에게 무겁게만 느껴질 이런 주제를 최씨가 풀어가는 방식은 그러나 무척 경쾌하다. 『영상의 물결이 폭풍을 몰고 오고, 현실이 꾸며낸 이야기(소설)를 압도하는 판에 누가 꾸민 이야기에 관심을 두겠는가』고 회의하는 작가는 그 회의를 타파할 방법으로 소설에 영상을 현란하게 도입한다. 『살아 있다는 느낌보다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들게 하는, 그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겨울 오후 범준은 도섭에게 이끌려 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영화를 보았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엘리베이터」 「펄프 픽션」 「순교자」에서 「꽃잎」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영화 이야기가 뼈대를 이룬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영화감독인 김도섭이다. 그는 신학대학 교수 박광렬이 아버지 박태봉을 권총 살해한 사건의 시나리오작업을 소설가 하범준과 시나리오작가 유정원에게 의뢰한다. 그들은 박광렬이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수사당국의 입장은 완전한 허구임을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박광렬의 아버지 박태봉의 우상숭배와 반인륜적인 음행이 밝혀지고 광주학살의 숨겨진 책임자라는 전력까지 드러난다…. 추리소설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전개를 통해 작가는 성경과 불경, 장자, 「티벳 사자의 서」 등 수많은 책과 영상에서 전개된 수많은 신,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주인공들의 사고와 대화에서 탐구한다. 광주와 아우슈비츠라는, 이 땅과 세계 역사에서 경악할 두 사건이 등장하지만 그것조차도 소설의 배경일 뿐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박태봉을 살해한 것은 아들인가 아니면 그의 변태적 간음의 희생자인 며느리인가, 작가는 분명한 결론을 숨겨두고 결국 영화도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소설을 맺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작가가 던진 신성과 인간성, 구원이라는 문제를 나름대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구원은 저기 불빛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추구의 과정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작가 최씨는 『나 자신 도대체 나의 삶을 과연 「살아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에 빠져 있는 나약하고 평범한 불가지론자』라고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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