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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없는 출발(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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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없는 출발(장명수 칼럼)

입력
1997.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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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충청도가 무슨 난리야. 충남 48.3% 충북 37.4%가 김대중씨를 찍었지? 김종필씨 한마디에 표가 그렇게 쏠리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사람들이야』

『대구 경북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지. 대구 72.7% 경북 61.9%가 이회창씨를 지지했잖아. 92년에 김영삼씨를 찍어서 나라가 이 모양이 됐으면 생각을 바꿔야지 또 여당을 찍어? 대통령을 뽑을 때마다 영남이 결정권을 쥔 것처럼 굴었는데, 이번에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서 시원해』

『호남은 정말 너무 했어. 다른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뛰어 넘을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게 해. 광주 97.3% 전남 94.6% 전북 92.3%가 김대중씨를 찍었는데, 이런 지지율이 어떻게 가능해?』

『충청도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했어.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의 깊은 골을 메워서 호남 출신 대통령 탄생에 나선 것은 사려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김윤환씨의 비영남 후보론에 비해서 충청도 사람들의 선택은 한 걸음 더 나간거야. 정권교체와 지역교체를 동시에 이뤘으니 얼마나 좋아』

충청도 출신인 한 친구가 결론을 내렸는데, 모두가 그에게 동의했다. 놀라웠던 것은 이번 선거에서 자기가 누구를 찍었는지 대부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 사이였지만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동안 각자 누구를 찍었는지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독재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 친정부냐 반정부냐를 가르는 흑백논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 경직된 정치문화로부터도 자유로워진 것을 기뻐해야 한다.

사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한 두명을 빼고는 이회창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은 이회창씨의 낙선을 섭섭해하고, 그가 당선되었다면 한국정치의 새 장을 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김대중씨의 당선으로 정권교체와 지역교체를 동시에 이룬 것이 잘된 일이라는 의견에 대부분 찬성했다.

선거직후인 19일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2.8%가 『선거결과가 잘 됐다』고 평가했다. 이회창 지지자의 74.7% 이인제 지지자의 84.4%가 선거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것은 관권 금권의 개입이 없었던 공정한 선거에 대한 평가, 정권교체와 지역감정 해소에 대한 기대가 합쳐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사에서 김대중씨의 당선으로 지역감정이 해소될 것이라는 의견은 58.2%, 오히려 심화할 것이라는 의견이 30.6%였다.

득표율 40.3%로 38.7%를 득표한 이회창후보를 40만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김대중 당선자는 적은 표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잘 됐다』는 폭 넓은 국민의 호감을 얻고 있다. 그는 TV토론에서 『세번이나 낙선되었을 때 하느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큰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역감정이나 정권교체에 있어서도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대통령이 됨으로써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

한 호남출신 중소기업인은 선거이후에도 계속 올라가는 환율과 증시의 추락을 걱정하면서 『지역감정 해소는 궁극적으로 김대중씨가 얼마나 좋은 대통령이 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가 실패하면 지역감정은 더 악화할지도 모른다. 그가 호남을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그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 많은 호남인들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15대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한 97년 12월, 온 나라가 암담한 분위기에 짓눌려 있다. 당선된 후 정부의 각종 보고를 들은 김대중씨는 『국가가 내일 파산할지 모레 파산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무디스사의 국가신용등급은 다시 2등급이 떨어졌고, 환율은 2,000원선을 돌파했다.

새 대통령에게 넘겨진 나라는 국가 부도의 공포로 하얗게 질려있는 나라다. 그래도 그는 든든하다. 그의 당선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국민이 그에게 협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축하 샴페인도 화려한 수사도 흥분도 없는 출발 속에 국민과 당선자가 결속한다면 위기의 극복도 그만큼 빠를 것이다. 그것이 오늘 캄캄한 어둠속에서 우리가 잡는 위안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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