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유가격 하락 추세로 산유국들에 비상이 걸렸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에 마음까지 얼어붙은 우리에게 당장은 상대적 박탈감을 배가하는 소식이지만, 갈수록 어려워질 경제사정을 생각하면 다행스런 일이다.국제 원유가 하락세는 한동안 지속돼 내년에는 올해 평균가격 대비 배럴당 1∼2달러 정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하락세가 나타나는 것은 「시장의 원리」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에서 가장 큰 요인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확대 결정이다. OPEC는 지난달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03차 총회에서 98년도 산유량 상한선을 하루 2,750만배럴로 10%나 늘렸다. 그러나 실제 산유량은 이보다 100만배럴 가량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카타르 등 일부 회원국의 상습적인 쿼터 위반행위를 제어할 뚜렷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OPEC 산유국들도 질세라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어서 유가 폭락사태를 빚을 수도 있다.
이라크의 원유수출 재개결정도 공급 과잉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4일 제3차 이라크 원유 부분수출 계획을 승인했다. 이라크에 판매가 허용된 「6개월간 20억달러 어치」를 생산량으로 따지면 하루 60만배럴 꼴. 판매 허용량을 30억∼40억달러 어치로 늘려주자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권고가 받아들여질 경우 이라크산 원유 생산량은 하루 최고 120만배럴까지 늘 수도 있다.
반면 수요는 아시아 경제위기의 여파로 소폭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특히 전세계 원유 수요의 25%를 점하면서 수요 증가율이 가장 높은 아시아 지역의 내년 수요량은 저성장과 환율부담 탓에 하루 34만배럴 가량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한파로 전세계 경제성장률이 덩달아 낮아진 점, 엘니뇨 현상으로 북반구의 올 겨울 기후가 예년보다 따뜻할 것이라는 예보도 산유국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내년 세계 원유 수요가 97년 73.8%에서 75.6%로 1.8% 증가에 그치는 반면, 공급은 97년 74.4%에서 77.9%로 3.5%나 늘 것으로 전망했다.<이희정 기자>이희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