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라형편을 차마 어찌 다 말하랴!(금일국사 상인언재)」이는 어려웠던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들이 일어설 때 한결같이 외쳤던 호소였다. 오늘의 국사는 구한말보다도 분명 더 어려워 한마디로 5,000년이래 최대의 위기이다.
이제까지 근 1,000번에 달하는 국난들이 모두 밖으로부터 밀려온 대외적인 것이었던데 반해 오늘의 이 난국은 바로 이 민족사 안에서 터지고 있는 대내적 위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남북분단 속에서 무너지는 남쪽의 경제는 그대로 북쪽의 유물주의 앞에서의 패배라는 점에서 그것은 통일의 앞날과도 결코 무관치가 않다. 그 위에 이 조국이 처해있는 유일분단이라는 의미는 오늘의 양극이 부딪치는 그 세계사적 최일선이라는 점에서 우리들 중심에서의 이같은 흔들림은 양극이라는 온세계 후방으로 직결돼 있다. 그러니 오늘의 이 국난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들이 반드시 풀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오늘의 모든 국민은 함께 의병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직접 4,000만이 모두 의병대장 노릇을 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죽음 속에서도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사중구생의 길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살 길을 열기 위하여는 근본부터 세우라(본립도생)」고 강조하여 왔다.
그렇다면 오늘의 죽어가는 경제 앞에 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근본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들 인간이 먼저 그 안으로부터 찾아 세워야할 덕 즉 도덕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서 덕은 분명 그 근본이고 재는 그 지말이다. 따라서 지말인 재에서 어렵게 된 오늘의 난국은 바로 그 근본인 도덕을 통하여 풀어야만 한다. 이 추운 한파에 언 발에 소변 본다고 그것이 풀리랴!
물론 그 책임은 정부나 재벌등에게 우선 물어야만 한다. 그동안 도덕적 근본을 도외시한 채 오직 재리에만 매달려온 저들의 우매와 오만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덕적 차원에서의 근본적 원인은 온 국민이 함께 뼈아프게 반성해야만 한다.
솔직히 국민의 생활 속에서 나를 위한 씀씀이 보다도 부모위해 저축하는 효성이 얼마나 있었던가. 재산 때문에 형제들이 법정에서 싸울 때 우애라는 도덕적인 생산력이 나올 수가 있었던가. 이것들이 확대되어 노사문제로까지 이어지면서 도덕적 비생산성은 끝없이 되풀이 되어왔다.
여기서 오늘의 국난 앞에 그 극복을 위한 소프트웨어적 책임은 우선 경제계나 재계 등에게 있지만 근본적인 하드웨어적 사명은 바로 온 국민이 의병으로서 그것을 짊어질 수 밖에 없다. 의병을 통해 우리는 정부는 패하여도 국민은 절대 패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수없이 읽어왔다. 수많은 국난 속에서 관군이 패할 때 의병이 이겨주었고, 일제 35년동안에는 정부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서도 국민이 승리함으로써 광복의 새 역사를 얻어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경제국난을 「제2의 광복」으로 모름지기 극복실현하여야만 한다. 그것은 결국 북녘의 유물주의 앞에 우리 자유자본주의가 완전 승리하는 것으로써 통일의 광복으로도 그대로 직결된다.
이를 위해 둘째로 우리는 이제까지 바른 살 길(정도)을 가로막아온 잘못된 옆길에 대하여 과감한 위정척사운동을 펼쳐야 한다.
「나무가 썩을 때 벌레가 생긴다(목선부 충생)」. 그것은 「근본이 서야만 살 길이 생긴다」는 말과 정반대 의미이다. 한마디로 오늘의 경제를 좀먹어온 원인잡균들은 바로 부패로부터 생겨나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남북관계에서 북녘의 독재와 함께 남녘의 부패는 똑같이 이 민족사의 적이다. 대통령은 남의 돈을 1원도 받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지금 국민 그 누구도 이를 믿어주지 않으니 그 약효는 이미 끝나버렸다.
이처럼 국민을 믿게할 수 있는 도덕적 근본이 없을 때 그 처방은 오직 국민이 스스로를 믿는 자신 뿐 이다. 바로 이 자신을 가지고 지금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이제까지 931차례의 국난을 한결같이 물리쳐온 우리 한민족이 아닌가.
이것을 믿으면서 우리는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잔치를 걷어치우고 근본이 확실한 민족의 향연을 다음과 같이 바르게 준비하자. 즉 정신차려 마음먹고 신명을 내자. 한마디로 술상대신 새로운 마음을 먹고, 경제적 취흥 대신 도덕적 신명을 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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