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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최고의 샘’ 우통수 간직한 한강 발원지(차따라: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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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최고의 샘’ 우통수 간직한 한강 발원지(차따라:33)

입력
1997.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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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1563m) 다섯 봉우리에는 봉우리마다 천년 차향이 깃들어 있다.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모셨다는 적멸보궁이 있는 중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옛부터 해동 최고의 물로 꼽혀 왔다. 적멸보궁아래서 지금도 솟아나는 용안수, 서대의 우통수 등 오대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수천리를 가도 다른 물과 어울리지 않는 우중수로 지금도 으뜸을 자랑한다.○세조도 목욕하고 피부병 완치1,300여년 전에는 신라의 보천, 효명 두 태자가 오대산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로 아침마다 다섯봉우리의 5만 진신보살에게 차공양을 올렸다. 조선 7대왕 세조(재위 1455∼1468)는 이 물로 목욕하고 악성 피부병이 나았다.

「서산의 높은 봉우리 외롭게 끊겼는데/ 우통의 물은 기운이 맑고 차네.(우통수담기청렬)/ 상인은 병가지고 손수 차를 달이고(상인휴병자전다)/ 서방의 극락세계 부처님께 예배하네」

「우통의 정화수는 깨끗함이 옥같은데(우통정수연여옥)/ 성스러운 향화는 바퀴같이 큼이라(서응향화대사륜). 희미한 여러 봉이 구름 속에 보이니/ 천녀가 옷깃 여미고 청신에게 공양하듯…」 생육신이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우통수를 이렇게 노래했다.

홍길동전을 남긴 허균(1569∼1618)은 「…봄온 뒤 숲에 꽃이 피지만 눈은 병들어/ 술은 남았는데 산새는 그윽한 잠을 깨우고/ 차그릇에 차를 끓여서 목마름을 잊네/ 어찌하면 천하 제일의 우통수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읊은뒤 우통수는 오대산 상원사 옆에 한강상류에 있는 동국 제일의 샘이라고 설명을 달아 놓았다.

많은 사람들은 삼국유사를 들먹이며 보천태자가 서대에서 우통수 물로 차를 올린 것으로 이해 하고 있으나 차연구가인 다정 김규현씨는 고개를 흔든다. 삼국유사에는 서대와 수정사가 나오고 우동수 동중수 우동영수는 나오지만 서대에 두 태자가 거처하며 이곳의 샘물로 차를 공양했다는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우통수는 고려말 조선초 목은 이색(1328∼1396)이 지은 동문선(권80)에 실린 양촌 권근(1352∼1409)의 <서대수정암중창기> 에 처음 나온다. 따라서 이때부터 서대의 샘물을 우통수로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중창기에는 「서대의 암자를 수정암이라 하는데 옛날 신라 태자가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서대 장령 밑에 샘물이 솟아나는데 빛깔이나 맛이 특이하고 보통물보다 무거웠다. 사람들은 그 샘을 우통수라 불렀고, 또 한강의 시원이라 하였다. 그리고 물의 빛과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이 중국 양자강과 같다」며 서대에서 보천태자가 수도한 것으로 써놓고 있다.

동문선에 이어 동국여지승람에도 「오대산 서대밑에 샘이 있어 용출하니 곧 한강물의 근원이다. 빛깔과 맛이 특이하고 무게 또한 다른 물 보다 무거워 우통수라고 한다. 우통수는 서쪽으로 수백리를 흐르면서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 간다. 비록 여러 곳의 물이 함께 흐르지만 우통수만은 가운데로 흐르면서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색미가 변하지 않음이 중국의 양자강과 같다」고 했다. 조선 단종 2년(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우통수는 한강의 시원으로 오대산 서대사에 위치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한수의 명칭도 우통수에 비롯되었고 춘추로 관에서 제사를 올리었다」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통수는 한강의 시원지로 또 특이한 물로, 도를 통하는 물로 모든 사람의 머리에 각인되어 왔다.

상원사에서 서북쪽 완만한 비탈길을 쉬엄쉬엄 20여분을 오르면 중대의 향각인 노전. 여기서 다시 20분 정도 더 오르면 적멸보궁이다. 오대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자락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중앙에 우뚝 솟아있다.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옛부터 천하제일의 명당으로 꼽아 왔다. 우리나라 5대 보궁중 첫째이다. 용머리부분에 있는 보궁의 아래, 용의 눈에 해당되는 지점에 용안수가 있다. 원래는 양쪽 눈자리 지점에 두개의 샘이 있었다하나 왼쪽 것은 자주 사용치 않아 매몰된 상태다. 오른쪽의 것은 지금도 면면히 흘러서 보궁을 찾는 참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감로수가 되고 있다.

상원사에서 서대 우통수로 가는 산길 2㎞는 얼마전 폭설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겨울철에는 스님도 내려 와 버린다며 안내판도 지워버리고 입구는 입산금지표지를 해 두었다. 몇번 찾아간 기억을 되살려 억지로 강행을 했으나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김규현씨는 오대산이 차의 성지가 되기 위해서는 보천태자가 골짜기의 신령스런 물(우동령수)을 마시며 50년간 차를 공양하며 도를 닦았다는 신성굴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김대성 편집위원>

◎알기쉬운 차입문/차는 정서적 음료라 잘 우려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나눌수 있는 자연·친구와 벗할때 진정한 맛/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차는 정서적 음료다. 예부터 「혼자 마시는 차는 신령스럽고, 둘이 마시면 빼어나고, 서넛이 마시면 아취가 있으며, 대여섯이 마시면 그냥 나누어 마신다」는 말이 전해온다. 차생활은 자연스런 멋의 연속이다.

초의 스님이 흰 구름과 밝은 달을 손님으로 청하여 차를 마셨다는 말을 듣고보면 자연과 벗하는 것이 바로 차생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자연스런 멋을 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차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아무리 차를 멋지게 우려낸다 하더라도 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무언가 빠진 것같다는 느낌이다.

차를 마시다 보면 하나 둘 찻잔이 늘어나면서 찻잔과 차관이 제법 찻장을 채우게 되고 차통도 하나 둘 늘어난다. 하나 둘 버리는 것이 차생활이라지만, 차를 처음 시작할 때는 차그릇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재미에 차를 마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벌로 마련한 찻잔을 이웃이나 친지에게 선물하며 같이 차생활을 하는 재미로 차를 마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때 비싼 차나 차구를 선물하여 장속에 모셔두게 하는 것보다는 부담없는 가격대의 차구로 생활속에서 차를 마실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것이 좋다.

좋은 경험을 같이 나누어 공감대를 이루는 것 만큼 좋은 사귐은 없다.

그래서 한 차인은 「글로써 벗을 사귄다(이문회우)」는 공자의 글을 「차로써 벗을 사귄다(이다회우)」고 고쳐서 지인들에게 차를 권한다. 「차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벗을 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믿음에서다. 정말 차를 오래 마시다 보면 흰 구름 밝은 달과 같은 자연이 더 좋아지고 그 가운데 흰 구름과 밝은 달을 닮은 차벗이 나타난다. 마음에 맞는 차벗이 한 둘이 있으면 이미 차생활도 진경에 들었다 하겠다.

연말연시 이렇듯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차벗과 맑은 차 한잔을 나누는 검소한 송년회와 새해맞이가 의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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