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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국민여러분’/봉두완 광운대 교수·신문방송학(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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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국민여러분’/봉두완 광운대 교수·신문방송학(화요세평)

입력
1997.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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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의 모습…/당선자 떨리는 첫마디를/국민은 기억하고 싶다”이번엔 참 이상했다. 대선 열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북에 고향을 둔 어느 신부는 느닷없이 김대중 후보를 찍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만은 DJ가 대통령이 돼야겠어…』

『아니, 신부님, 이북에서 오신 분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아니야, 몰라서들 그래. 가만히 보면 가진 사람, 누린 사람들이 그냥 옛날처럼 머물러 살겠다는 건 말이 안돼.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인데…』

『…』

그런데 「오죽했으면…」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 사제까지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를 간절히 바라는 것일까.

『어쨌든 DJ는 절대 안돼!』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던가. 특정지역 연고에 매달려 있거나 가진 것 누리는 것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사람들, 이른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는 없는 이, 힘없는 사람,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너무나 인색했다. 강자에겐 비굴하리만큼 무조건 순종적이면서도 약자에 대한 배려는 외면해 온 우리들….

이런 행동양식은 오랫동안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의 갈등과 불신으로 쌓여 사회통합을 가로막아 온게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속에 국가부도 위기까지 맞게 된 원인도 그런 악순환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국민은 위대한 선택을 했다. 「변화와 개혁」을 원하던 이들에게는 「필요한」 선택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선택으로 보였을 것이다.

김대중당선자는 자기를 아직도 외면하는 나머지 60%를 만족시키며 화합과 일치를 통해 국가를 위기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과연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경천애인. 당선직후 기자회견 첫머리에 떨리는 음성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이라고 했던 그가 국민을 아끼고 국민을 어려워하는 마음을 내보일 때 그동안 절실하게 염원하던 신뢰회복과 사랑의 공동체는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행복론」을 쓴 칼 힐터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 했다. 맹자 또한 「인자무적」이라 했다. 우리는 김대중 당선자가 사랑의 힘을 빌려 새로운 화합의 장을 열어주길 바랄 뿐이다.

「새로운 시작」. 98년은 대한민국이 이 땅에 세워진지 50년을 맞는 해다. 그 반백년 헌정사에서 김대중씨처럼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사람도 없을 것이다. 6년간의 감옥생활, 10년간의 연금·망명생활, 그리고 4수끝에 대통령 당선!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궤를 같이 해온 민주화투쟁의 길은 그렇게도 험난했다. 하지만 겨울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겨내고 의연하게 피는 꽃을 인동초라 하지 않았는가. 봄은 아직 멀었다. 더욱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직 수행은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줄기찬 운동일 뿐이다. 탄압과 차별의 희생양이었던 김대중 차기대통령이 「사랑과 포용의 정치」를 펼쳐 나갈 때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될 것이며 그의 정치력은 증폭될 것이다. 흔히 정치력이란 미래를 예감하는 능력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김대중 당선자가 미래를 걸고 약속했던 것들을 이제부터는 차분히 점검해 볼 때다. 5년후 그 많은 약속들이 왜 예언대로 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정치력이기 때문이다.

언필신 행필과. 논어의 말이다.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하고 행실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

정녕 우리는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통령을 이제 볼 수 있을까. 국민이 뽑은 지도자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이 자기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은 꼬이게 마련이다.

어느 성당에서 젊은 사제가 강론 중에 『참 걱정이에요. 이번 대선에서 틀림없이 가톨릭신자가 당선될텐데 우리는 어떡하죠? 또 YS처럼 바가지로 욕먹게 되는 것 아니에요?』라며 걱정부터 하는 것이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라고 한 대통령 당선자의 떨리는 첫마디. 우리는 그것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들 앞에서 조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동안이나 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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