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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는 자의 당당함/조성기 소설가(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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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는 자의 당당함/조성기 소설가(특별기고)

입력
1997.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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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염려 전씨 말엔 아직도 ‘가시’ 느껴져 역사앞에 겸허 없이는 대화합 취지 빛바래용서에 관한 뛰어난 단편소설로는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자신의 아이를 유괴하여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아이의 어머니는 교도소에 갇힌 범인에 대한 원한과 저주로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중에 기독교에 귀의하여 신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주인공은 심한 갈등 끝에 주위 신도들의 도움으로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 초자연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주인공이 범인을 면회하러 간다. 그런데 초췌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할 줄 알았던 범인은 의외로 훤한 얼굴에 미소까지 띠며 면회소로 나와 마침내 신의 용서를 체험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주인공은 범인을 용서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신을 향해 원망한다. 『당신이 뭔데 저런 놈을 용서하는 것입니까. 저 놈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나밖에 없는데 왜 나에게서 용서의 기회와 권리를 빼앗아가는 것입니까』

어제 상오 11시께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고 안양교도소를 나와 기자들에게 소감을 발표하는 전두환씨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용서가 완성되려면 용서하는 자의 아픔에 용서받는자의 아픔이 적절히 화응해야 한다. 물론 전두환씨도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말을 하긴 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어조에서는 용서받는자의 아픔같은 것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IMF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염려하는 말의 저변에는 자기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는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는데 지금의 대통령이 얼마나 정치를 잘못했길래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는 자기과시가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이런 심리를 분석심리학에서는 에고 인플레이션(Ego­Inflation), 즉 「자아팽창」이라고 하는데 전두환씨의 경우는 불교적인 수양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가 깊은 것 같다. 그만큼 욕을 당하고 고생을 했으면 한풀 꺾일만도 한데 아직도 말에 가시를 품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오기가 섬뜩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국민 대통합과 화합을 위해 전직 대통령들을 사면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오히려 정치적인 복수극이 암암리에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마저 드는 것은 필자의 소심함 때문일까.

필자의 불길한 예감대로 사태가 진전된다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특별사면·복권까지 해준 김영삼대통령은 5·18특별법을 만들 때처럼 스스로 자기 족쇄를 채우는 결정을 또다시 내린 셈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대통령에게 초법적인 특별사면권과 특별복권권을 주고 있는 헌법조항이 사실은 헌법의 기본정신인 만인평등주의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듯이 유권무죄내지는 유세무죄라는 말이 생길 법도 하다. 정치적인 판세를 등에 업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특별사면을 단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대통령에게 특별사면권을 주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모든 것을 사법적인 판단에 맡긴 채 정치적인 짐을 덜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헌법학에서 학문기술적으로 좀더 깊이있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울분을 삭이며 용서하는 자의 아픔조차도 미처 갖추지 못하고 있는 5·18피해자들은 「벌레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이렇게 속으로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뭔데 그런 자들을 사면해준다는 말입니까. 그런 자들을 사면해줄 수 있는 권한은 우리밖에 없는데 왜 우리에게서 그러한 기회와 권리를 빼앗아가는 것입니까』

이렇게 외치는 백성들이 한편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사면대상자들과 그 측근들은 정치적 판세가 좀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기보다는 역사와 국민 앞에서 더욱 겸허해져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사면의 취지가 살아나 지역갈등 해소를 비롯한 국민 대통합과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면이 오히려 지역간 갈등을 더욱 부추길 위험성이 있다.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자의 심리적 밸런스가 맞지 않는데서 오는 부작용은 의외로 심각한 양상을 띨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사면조치가 해원의 마무리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또 하나의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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