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영삼 대통령께 묻습니다(동창을 열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 묻습니다(동창을 열고)

입력
1997.12.22 00:00
0 0

15대 대통령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각하, 정권이양의 날도 멀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각하께서는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몸담으셨던 정든 청와대를 떠나 이제 수리가 다 끝난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상도동 댁으로 이사를 가실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만일 헌법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조항만 없었어도 각하께서는 틀림없이 재선의 가도를 질주하셨을 터인데, 독재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마련된 헌법의 이 한줄 때문에 각하께서는 정권 연장을 위해 전혀 손도 못써 보시고 그 자리를 물러나시게 되었습니다. 한평생을 오로지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오셨으니, 5년전 당선되신 그 날이 일생일대에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었다면 그로부터 5년 뒤, 15대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해야 하는 오늘이 각하의 일생에서는 가장 허전한 날이 되겠습니다.

각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내년 2월이면 퍼스트 레이디가 될 이희호 여사와 함께 「당선증」을 들고 사진을 찍은 것을 보니, 비록 근소한 표차로 당선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각하께서 누리시던 대권을 김대중씨가 승계할 것이 확실시되는데, 각하의 느낌은 어떠하신지요. 흔히 두분의 관계를 「애증 30년」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사랑과 미움의 30년이 아니라 오로지 미움의 30년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믿어집니다.

71년 대선때는 응당 각하께서 따내실 것으로 모두가 믿고 있었던 후보 자격을 김대중씨가 가로챘다고까지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당시의 각하의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87년 대선때 만일 김대중씨가 정통 야당이라고 하던 당시의 신민당을 이탈하여 평민당을 만들고 따로 대통령 출마를 하지 않았던들 각하께서는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고 2위에 머무는 참담한 운명을 감수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90년 1월22일, 각하께서 대통령이 되시려는 오직 하나의 야망만을 품고 이른바 「3당 통합」이라는 기상천외의 정치적 곡예를 감행하시면서 김대중씨를 완전히 따돌렸을 때 오늘의 대통령 당선자의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였을 것 아닙니까. 그런 두분 사이에 무슨 사랑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각하, 이번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은 전혀 풀리지가 않는데, 두분 사이가 「미움의 30년」이었으나 사랑도 조금은 끼여 있었던 것 같은 느낌에 사로 잡힙니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하께서는 여당이던 신한국당을 지리멸렬의 정당으로 부서뜨리셨는데 그 저의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정치 9단임을 자랑하시는 각하께서 하신 일인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하지는 않으실 것으로 믿습니다. 각하의 진의를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각하께서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투표장에 나타나신 모습을 TV 화면을 통해 뵐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나라인지라 투표의 비밀만은 철저히 보장되어 있으므로 각하께서 어느 후보를 찍어 주셨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마는 대답은 안하시더라도 질문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각하, 어느 후보의 이름 위에 도장을 찍으셨습니까. 1번입니까, 2번입니까, 3번입니까. 이회창입니까, 김대중입니까, 이인제입니까.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각하께서 만일 김대중 후보에게 표를 던지셨다면 투표인 총수 2,604만3,195명 중에서 김대중 후보를 찍어 준 1,032만6,275명을 뺀 1,571만6,920명의 투표자는 각하를 배신자로 여길 것이고, 각하께서 만일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셨다면 국민은 각하를 표리부동의 졸장부로 여길 것이 명백합니다. 물론 이모, 서모, 박모, 한모등 각하의 심복들이 국민신당에 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앞으로 한나라당에서 민주계의 20명 가까운 현역의원들이 신당으로 줄달음질칠 것이라는 풍문이 떠돌기는 하지만 설마 각하의 저의가 그런데 있지는 않으시겠죠.

각하께서는 스스로 창출하신 신한국당의 경선으로 선출된 이회창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셨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여당」의 후보를 왜 공적으로는 전혀 두둔도 안하시고 지지도 안하시고 후보 혼자 외롭게 뛰다가 말라서 죽도록 버려두셨는지요. 각하, 그것이 알고 싶어 묻는 것 뿐입니다.<김동길·전 연세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