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외국자본 국내 인수·합병 사실상 자유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외국자본 국내 인수·합병 사실상 자유화

입력
1997.12.21 00:00
0 0

◎불어오는 ‘기업사냥’ 태풍 M&A「5조원만 있으면 한국의 모든 금융기관을, 27조원으로는 포철과 한전을 제외한 한국의 모든 상장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

M&A(기업 인수·합병) 비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함께 우리 자본·주식시장의 빗장이 완전히 풀리면서 외국 기업에 의한 한국 기업의 인수·합병이 가시권에 들어 온 것이다.

하지만 M&A 태풍 앞에 우리 기업들은 취약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이 누적되어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조업체들도 주식 지분구조가 엉망이어서 외국 기업사냥꾼이 끈질기게 공격할 경우 먹이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외국 자본이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을 노리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첫째는 국내 주식 가격이 금융 혼란의 여파로 실질가치의 절반 이하로 저평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때 1,000포인트를 넘던 주가가 300∼400포인트 대로 폭락한 상태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정상화하면 엄청난 차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5조원으로 한국의 모든 금융기관을, 27조원으로 한국 상장기업 대부분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최근의 주가 추이를 반영한 것이다.

두번째는 달러 가치가 매우 높아져 적은 달러로 M&A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지난해 800원대에서 최근에는 1,400∼1,500원대까지 떨어졌다. IMF구제금융으로 환율이 올라가도 1,200원대 안팎에 머무른다는 전망인 만큼 외국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저평가된 주식가격에 고평가된 달러가치를 십분 활용, 국내 주식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국내 688개 상장회사중 지배주주의 지분이 50%를 넘는 기업이 5%에 불과할 정도로 최대주주 지분비율이 약하다.

여기에 정부도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50%로 확대하는 등 M&A활성화 조치를 취해 외국인의 국내기업 인수·합병은 법적·제도적 지원을 얻게 됐다.

그렇다면 외국 기업들의 1차 타깃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이라고 말한다. 우선 금융기관을 흡수·합병해 돈 줄을 움켜쥔 다음 제조업 등 기간 산업을 간접 지배하거나 자산가치가 높은 기업군을 직접 M&A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 재정경제원도 부실 시중은행중 한 곳을 외국 금융기관에 인수·합병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기업은 정부와 법령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매우 적은 자본으로 수많은 계열기업을 거느리는 혜택을 누려왔기 때문에 외국자본의 공세에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대우증권 이황상 M&A팀장의 분석. 『우리나라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대주주가 얼마되지 않는 지분만으로 절대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또 이를 발판으로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해왔다. 따라서 적대적 M&A 공격을 받아 모기업이 넘어갈 경우 계열기업이 고구마 줄기처럼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한 재벌기업의 주식지분 구조는 우리나라 기업이 M&A태풍앞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최대주주인 Z씨 일가는 모기업인 A사에 불과 4%의 주식만을 소유하고 있다. 또 A사는 계열사인 B사의 대주주로 이 회사에 대해 13.9%의 지분을, B사는 C사의 대주주로 역시 이 회사 주식에 대해 19%의 지분을 각각 갖고 있다. 따라서 누구든 이 기업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하려면 이론적으로는 A기업 주식의 4%이상만 매집하면 가능하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국내기업들은 서로 적대적 M&A를 시도하지 않는다. 다들 비슷한 처지에 있을 뿐 아니라 대주주들간에 「적대적 M&A를 하지 않는다」는 묵계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외국인들이 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우리 기업을 사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M&A가 한국 경제를 더 튼튼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거대 외국자본의 무차별적 공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조재우 기자>

□관련용어 해설

◎M&A(Merger and Acquisitions)

「합병(Merger)」과 인수(Acquisition)의 합성어로 기업의 경영지배권 획득을 위한 행위를 포괄적으로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사업의 일부를 처분하거나 다른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것 등도 포함된다.

M&A의 가장 전형적 수단은 회사의 주식을 사 들여 이사회 의결권을 확보하는 것 주식을 매수하지 않고 의결권을 위임받는 수도 있다.대상기업의 기존 대주주 또는 경영진과 합의를 본 뒤 진행하는 M&A를 「우호적 M&A」라 부른다.적대적 M&A의 경우 대상기업쪽에서 다양한 전략을 동원해 경영권 방어에 나선다.

◎백기사(White Knight)

기업사냥꾼으로 부터 적대적 공격을 받고 있는 기업을 대신 인수해 주는 우호적인 제3의 세력.적대적 M&A를 당하는 쪽에서 더이상 방어능력이 없을때 자기 회사에 우호적인 다른 회사에 도움을 요청해 대신 경영권을 인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백기사처럼 기업을 인수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고 기업의 주식 지분 확보를 도와주는 세력은 백영주(White Squire)라고 한다. 국내에서 백기사의 예는 아직 없었지만,올해초 한화종금을 둘러싼 경영권 싸움에서 대우그룹이,미도파 지분 싸움에서 삼성 등이 백영주 세력으로 나선 적이 있다.

◎흑기사(Black Knight)

적대적 M&A가 진행중일 대 공격·방어측과 다른 제3의 세력이 독자적인 경영권 획득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

◎그린메일(Green Mail)

「그린」은 녹색인 달러화를 말한다. 즉,「돈을 요구하는 편지」라는 뜻, 한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 모은 뒤 경영진을 위협해 주식을 시가보다 비싸게 되사도록 하는 세력을 일컫는다. 경영진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 다른 기관에 매수가보다 놓은 가격으로 주식을 넘기기도 한다.

M&A를 위장해 주가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올해 대농그룹을 파산으로 몰아넣은 미도파 경영권 싸움도 홍콩의 그린메일세력이 개입한 것,해외 세력이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미도파 주식을 사모은 뒤 이를 훨씬 비싼 가격으로 미도파에 되팔았다. 결국 대농은 이때의 무리한 자금동원으로 부도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적대적 M&A로 현 임원진이 물러날 경우 퇴직금을 지급토록 하는 등 금전적·비금전적 보상을 정관에 규정해놓는 것을 말한다. M&A를 시도하는 기업의 자금 부담을 늘려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전략의 하나다. 이규정이 적용대상을 최고경영자에서 전 종업원까지 확대하면 은낙하산(Silver Parachute)이라고 한다.

M&A이후 경영진이나 임직원이 계약 만효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종의 고용보호책도된다. 우리나라는 퇴직금 제도가 광범위하게 도입돼 있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데에는 별 효과가 없다. 중간관리자에 대한 보상은 납낙하산(Lead Parachute),일반 직원에 대한 보상은 양철낙하산(T in Parachute)이라고도 한다.

◎상어퇴치법,꿈의 포옹,왕관의 보석

상어퇴치법(Shark Repellant)은 적대적 M&A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인수가 어렵도록 회사의 접관을 고치는 것. 이사진 교체시 이사회의 정족수를 아주 늘리거나 이사진의 임기만료를 들쑥날쑥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이밖에 곰의 포옹은 M&A시도 전에 타깃으로 삼은 기업의 최고 경영자에게 편지로 인수 의사를 밝히는 것.상대기업이 부정적 입장을 밝히거나 답장을 하지 않으면 적대적인 M&A가 시작된다.

또 왕관의 보석(Crown Jewel)은 기업의 가장 핵심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주요 자산.이를 확보하기 위해 M&A를 시도할 경우가 많은데 방어책으로 「왕관의 보석」을 팔아버리기도 한다.

방어하는 쪽에서도 타격이 큰 「고육지책」이다.<김경화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