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 새 장 열었다” 환호/국민회의 “정말 우리가 해냈습니까”/일산자택 지지자들 “김대중” 연호/한나라는 초반리드 흥분도 잠시/대세 기울자 침통 뿔뿔이 자리 떠수십년만의 정권교체는 결코 쉽지않은 여정이었다. 김대중 국민회의후보 진영에서 『정말 우리가 해냈는가』라는 경이의 탄성이 터져나올 정도로 정권교체는 모두에게 낯설었다.
정권교체의 새 장을 열어준 개표도 드라마틱했다. 당선자가 김대중후보로 굳어지기까지 1초, 1초 숨막히는 긴장의 궤적이 그려졌다. 18일 하오 7시20분께 개표가 시작된 이후 아무도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대접전이 무려 3시간여 계속됐다. 접전의 3∼4시간은 개표 초반부터 각축을 벌인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후보에게는 「피 말리는」 고통이었다. 모든 신경을 개표 방송에 쏟은 두 후보진영에서도 선두가 뒤바뀔 때마다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그러나 하오 10시30분 김대중 후보가 선두로 치고 나오면서 서서히 판세의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김후보의 우위가 한번도 뒤집어지지않고 당선이 확실시되자 국민회의에서는 『50년만의 정권교체』 『이제 한국 정치사는 새로 쓰이게 됐다』는 흥분섞인 의미부여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자정을 넘겨 19일 새벽까지 두 후보간 격차가 1% 내외에서 오락가락하자 한나라당에는 『행여나…』하는 기대감이 걷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다수 당직자들은 『이제 잔치는 끝났다』고 탄식하며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결국 19일 새벽 동이 터올 무렵 대세가 완전히 기울자, 국민회의의 환호가 한나라당의 눈물을 뒤덮으며 드라마같은 대접전의 막이 내려졌다.
○…국민회의는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김대중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진 19일 새벽 일산 자택에는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하며 정권교체의 기쁨을 만끽했다. 누군가가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노래를 부르자 지지자들이 모두 합창, 김후보 자택주변은 그야말로 축제의 한마당으로 변했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는 새벽에도 모습을 드러내지않았다. 당선이 확정될 때까지는 자중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김후보는 자택 2층 안방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손을 맞잡고 정치입문부터 이날까지의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는 후문이다.
당직자들도 환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18일 밤 10시20분께 김후보가 이후보를 2위로 밀어내면서부터 당직자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승리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공동선대위사무실에서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당직자들이 『역시 DJT연대는 필승카드였다』 『이제는 안정권에 들어간 것같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김종필 공동선대위의장은 공동선대위 사무실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본 뒤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말했다. 김의장은 개표 초반부터 『우리는 김후보의 당선을 위해 있는 정성을 다해 전국을 돌아다녔다』면서『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이지만 우리가 이긴다』고 자신했다.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과 이종찬 한광옥 부총재 등 핵심당직자들은 당선이 확실해진 밤 12시께 여의도 중앙당사 총재실에 모여 김후보의 당선인사, 향후 국정참여 프로그램을 상의하는 등 사실상 정권인수작업을 준비했다. 조세형 권한대행은 『역사적인 정권교체의 날이 밝아오고있다. 우리는 국민의 뜻에 거스르지않는 훌륭한 정치를 하겠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국민회의도 한때는 마음을 놓지못했다. 개표가 시작된지 3시간이 넘도록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1%의 시소를 보이자, 모든 당직자들이 손에 땀을 쥐며 긴장했다. 그러면서도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각종 채널을 통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김후보가 결국 2∼3%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나라당은 밤 늦게까지 팽팽한 긴장감속에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시소게임을 숨을 죽인채 지켜보았다. 신경식 후보비서실장은 『정치입문 10년이 넘었지만 이런 선거는 처음』이라며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김덕룡 공동선대위원장도 『워낙 미세한 싸움이라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당직자들은 투표결과를 예상해달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좀 더 두고보자』며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19일 새벽 김대중 후보의 우세구도가 반전되기 어렵게되자 당직자들은 한숨을 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짓다가 하나 둘 자리를 떴다.
이회창 후보도 시내 모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개표방송을 쭉 지켜봤다. 이후보는 개표 초반 승세를 보일 때만해도 다소 흥분된 모습이었으나 밤 자정께부터 비세를 느끼고 마음을 가라앉혔다는 후문이다.
개표가 시작되기 전부터도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했다. 투표마감과 함께 발표된 한 방송사의 출구여론조사 결과 이후보가 김후보에게 1%포인트 차이로 뒤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사 10층에 마련된 종합상황실 관계자들은 『그 정도는 여론조사 오차한계 범위내인 만큼 연연할 필요없다』며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혹시나…』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이후보의 열세가 예상된 부재자의 투표향배가 여론조사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관적 전망이 나오기도했다.
그러나 하오 7시가 지나 실제 개표가 진행되면서 한때 한나라당에는 승리를 예감하는 분위기가 가득했었다. 이후보가 초반 1시간 정도 근소한 차이로 김후보를 앞서나가자 『조금 더 벌어지면 좋겠다』는 조바심섞인 기대감이 있었다. 박수와 환호성도 한때 울렸다. 윤원중 후보비서실 부실장은 『이후보가 부재자 투표함이 열린 초반 개표에서도 다른 후보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환 공동선대위의장은 대구·경북지역의 「몰표」를 거론하며 『역시 TK는 화끈하다. 득표율 1%, 30만표차이로 이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도 잠시, 하오 10시20분께 김후보가 다시 이후보를 추월하자 상황실에 모여있던 지도부는 각기 자기방으로 흩어져 자파의원들과 함께 침묵속에 TV를 응시했다. 이기택 공동선대위의장은 『아무래도 부산에서 이인제 후보를 압도하지 못한 것이 꺼림칙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벽녘에는 대다수 당직자들이 『아무래도 어려운 것 같다』며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이영성·장현규·유성식 기자>이영성·장현규·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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