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멎은 탄성… 피말린 탄식/“아!” 돌아서면 “어…” 초반 엎치락 뒤치락18일 하오 6시20분께 준비가 가장 먼저 끝난 경북 포항 북구에서부터 시작된 15대 대통령선거 개표는 별다른 불상사없이 순조롭게 계속됐다. 그러나 선두가 시시각각 뒤바뀌는 등 전례없이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면서 개표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새벽 6시부터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된 투표에서 노인과 장애인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기꺼이 주권을 행사했으며 특히 귀순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국가원수를 뽑는다는 「첫 경험」에 감격스러워했다.
◎종로구 국내외 보도진 100여명 “취재전쟁”
◆개표
○…서울 관악구 신림9동 삼성고교 강당에 마련된 관악 을구 개표소는 하오 8시께부터 검표를 시작했다. 이곳 선관위원장을 맡은 유철균(44) 서울지법 민사26부 부장판사는 개표에 앞서 100여명의 개표원들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의 대통령 선거이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정하게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각당 당원들로 구성된 참관인들은 각 개표소마다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은채 개표과정을 지켜보았다. 참관인들은 특히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알려지자 한표라도 더 건지기위해 곳곳에서 무·유효표 여부를 놓고 서로 실랑이를 벌였다.
○…전통적인 「정치1번지」인 서울 종로구의 구청 별관 3층 대강당 개표소에는 미국 CNN 등 방송과 로이터 AP AFP UPI 등 통신사, 외국신문의 특파원 등 100여명의 해외보도진이 몰려 이번 대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또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도 100여명의 국내외 보도진이 몰려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하오 8시50분께 대구 북구 침산동 북구청 4층 대회의실에 마련된 북구을 개표장에서 자민련 박철언 의원과 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이 참관증도 없이 개표장에 들어갔다가 타정당 참관인의 항의를 받았다. 이에 따라 박의원은 타당 참관인들에게 사과한뒤 5분만에 퇴장했으나 추의원은 즉석에서 참관증을 교부받아 개표상황을 지켜보았다.
○돌발사태 대비 밤샘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상임공동대표 손봉호)는 전국 48개 지역공선협 사무실에 4∼5명씩 상근자와 자원봉사자들이 「돌발사태」를 대비하며 밤을 새웠다. 김기현 차장은 『워낙 박빙의 대결이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공명분위기속에서 선거가 이뤄진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지키겠다』고 말했다.
○…한편 투표일인 이날 임시유일인데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IMF)한파와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높은 관심때문에 평소 휴일보다 나들이 차량이 오히려 20% 가량 줄었으며 행락지도 한산했다. 강원 용평 홍천 보광 스키장의 경우 스키인파가 대거 몰릴 것이란 예상을 깨고 평일보다도 입장객이 적어 썰렁한 분위기였으며 콘도 예약률도 평소휴일의 80∼ 90%보다 훨씬 낮은 20∼30%선에 머물렀다.
◎독도 유일주민 부부 울릉도서 귀중한 한표
◆투표
○…인천 강화군 삼산면 미법도 제6투표소는 전체유권자 24명 가운데 부재자 1명을 제외한 23명 전원이 이날 상오 5시40분께부터 투표소가 마련된 마을회관에 모여있다가 투표시작 8분만인 6시8분에 모두 투표를 마쳐 전국에서 가장 먼저 투표를 완료했다.
독도의 유일한 주민 김성도(57)씨는 부인 김신열(59)씨와 함께 전날인 17일 어선으로 울릉도에 도착, 이날 상오 10시께 도동리 읍사무소에 설치된 제1투표소에서 귀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국토 최남단인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마라도주민들은 상오 9시40분께 군 어업지도선 마라호(40톤)를 타고 5.5㎞떨어진 모슬포로 건너가 대정읍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주권을 행사했다.
○전·노씨 가족 사면설 반색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는 상오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사무소에 나와 선관위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뒤 투표했다. 이씨는 전씨의 성탄절 사면설에 대해 『새정부가 탄생하고 석방되면 더 좋은 일이 없겠죠』라고 희망을 내비쳤다.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씨도 동네주민 5, 6명과 함께 하오 1시께 연희2동사무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장애인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행렬에 참여했다. 경기 하남시 사랑쉼터교회(담임목사 김상희·33)에 사는 장애인 유권자 13명은 상오 10시 교회버스를 이용, 하남농협 초이동지점 지하 1층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서울 강북구 수유1동 서울한빛맹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에서는 상오 10시께 이 학교 소속 시각장애인 10여명이 선거사상 처음 도입된 투표보조용구를 이용해 투표했다.
그러나 고등부2년 손연익(32)씨는 『투표보조용구를 종이로 만들어 일반 투표용지와 구분키 힘들다』고 용구의 결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귀순자도 첫 참정권/황장엽·김덕홍씨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큰 긍지”
○…지난 2월 망명, 8월에 국적을 취득한 황장엽씨와 김덕홍씨는 상오 6시30분께 일찌감치 주소지 투표소에 나와 첫 참정권을 행사했다. 황씨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신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돼 커다란 긍지를 느낀다』며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국민이 애국의 일심으로 단결, 우리 민족의 소망인 조국통일을 앞당겨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인천 앞바다를 통해 극적으로 귀순환 김원형(57)씨 일가족도 상오 9시 서울 강서구 가양3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 부인 김미자(53), 둘째아들 희영(26)씨 등 4명의 가족과 함께 투표를 마치고 나온 김씨는 『반대는 없고 오직 찬성만 있는 북한과는 달리 마음에 드는 후보를 직접 뽑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94년 4월말 일가족과 함께 귀순한 여만철(52)씨도 부인 이옥금(49)씨 등과 함께 서울 광진구 구의3동 제6투표소에서 투표했으며 지난해 12월 귀순한 김경호(62)씨 일가족 10명도 이날 상오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제5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북한의 전 잠비아주재대사관 3등서기관 현성일(38)씨도 상오 10시 서울 도봉구 창1동 제1투표소에서 첫 참정권을 행사한 뒤 『이렇게 한 표를 던짐으로써 지도자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건·사고/“실수로 타후보에 기표” 용지소각 소동
○…이날 투개표과정에서 사소한 말썽과 실수가 일부 있었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울산 중구 우정동 개표소에서는 이중투표 주장이 제기돼 봉인투표함이 옮겨지지 못해 2시간여동안 개표가 늦어졌으며 강원 춘천시 을선거구에서는 국민회의측이 선거인명부의 일련번호 41개가 빠졌다고 주장, 개표가 3시간이상 늦어지기도 했다.
○…서울 중구 개표소에서는 하오 10시30분께 신당6동 4투표구와 중림동 3투표구 투표함 2개의 입구가 봉인만 된채 참관인 날인이 안돼 한때 개표가 중단되는 소동을 빚었다.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참관인들은 먼저 다른 투표함부터 개표키로 하고 봉인이 안된 투표함은 일단 개표를 보류한 뒤 개표를 재개했다.
○…이에 앞서 투표과정에서는 전북 김제시 죽산면 제2투표소에서 오영봉(57)씨가 『실수로 타후보에게 잘못 기표했다』며 라이터로 투표용지에 불을 붙이자 선관위직원들이 80%가량 타버린 투표용지를 빼앗아 투표함에 넣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선관위직원들은 『해당표는 무효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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