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 맺힌 당신의 한과 분노 고이 접고 이제 편히 잠드세요」18일 상오 11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앞. 「열일곱 꽃다운 순결을 능욕당하고 50년 세월 건너 두 번 능욕은 당할 수 없다」며 절규하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노제가 열렸다.
추모시를 낭독한 고혜정(40·정신대연구소 연구원)씨는 『우리의 용기 우리의 힘 우리의 십자가 김학순 할머니』를 목놓아 부르며 91년 8월 최초로 자신이 일본군위안부였음을 밝힌 높은 뜻을 기렸다. 또 위안부출신인 이용수 할머니는 『고인은 동지이기 이전에 모두의 스승이었고 옳은 길을 일깨워준 인도자였다』고 애도했다. 92년 일본 법정에서 일제의 만행을 당당히 밝히던 김할머니의 증언육성이 흘러나오는 동안 참석한 서울지역여자대학협의회 소속회원 100여명의 분노서린 흐느낌이 이어졌다.
노제의 사회를 맡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김윤옥(59·여) 공동대표는 『고인은 일본군위안부의 고통을 상징하는 국제적인 투사였다』며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면서도 「정신적인 승리가 있을 때까지 일본이 주는 그 어떠한 돈도 받지 말라」고 유언하셨다』고 말했다.
김할머니의 유해는 경기 고양시 벽제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충남 천안시 망향의 동산에 안장됐다.<최윤필 기자>최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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