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속 삶의 길 달랐어도 사랑·봉사 실천 ‘한길’테레사 수녀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는 묘하게도 97년 늦여름 불과 닷새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판이하게 다른 삶의 궤적을 밟았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내면적으로는 닮은 꼴이었다.
다이애나는 8월31일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벤츠 세단과 오토바이를 탄 파파라초(상업적 사진사)들간의 추격전에서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찰스 왕세자와 결혼, 「신데렐라」가 된 왕세자비의 죽음치고는 너무도 비참했다. 81년 7월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그에게 아낌없는 축복을 보냈던 세상 사람들도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는 생전에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 두 왕자를 출산하는 등 잠시 행복을 맛보기도 했지만 왕세자의 외도로 인한 불화와 별거 때문에 적잖은 정신적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쓰디쓴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그는 또 다른 연인과 함께 새 인생을 꿈꾸다 36세를 일기로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마음의 여왕」으로 여기고 있다. 불행에 굴하지 않고 남과 자신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이와 노인, 에이즈와 암환자를 위해 꾸준히 자선활동을 벌였다. 목숨을 걸고 앙골라와 보스니아의 지뢰밭을 걷는 용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세계는 그에 대한 추모열기로 가득했고 팝송 가수 엘튼 존이 장례식에서 부른 조가 「바람 속의 촛불」은 한달만에 사상최고 판매기록을 세웠다. 그의 죽음은 또 황색언론의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었다.
닷새후인 9월5일 밤 인도 캘커타에서 반세기동안 구호활동을 해온 테레사 수녀가 87세의 천수를 누리고 영면했다. 알바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46년 요양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캘커타로 달려가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했다. 그는 이후 세계 126개국에 선교회를 전파했으며 죽음 직전까지 극빈자와 고아, 난치병자들을 위해 몸을 바쳤다. 7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타는 등 전세계인의 존경도 이어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전세계 가톨릭계와 각국 지도자들은 「살아있는 성녀」였던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테레사 수녀의 죽음이후 다이애나에 대한 추모열기도 더욱 뜨거워졌다. 생전에 다이애나가 테레사 수녀를 많이 도와주었고 테레사 수녀도 다이애나를 깊이 신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외모에서는 비슷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테레사 수녀의 헌신과 다이애나의 미소는 묘한 조화를 이루며 세인들의 가슴깊이 남아 있다.<이종수 기자>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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