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등 거부않는한 국회통과 확실시그동안 정치권의 「핍박」을 받아오던 금융실명제가 마침내 생사의 기로에 섰다.
주요 3당이 18일 대통령선거 직후 무기명장기채를 허용하고 금융소득 종합과세도 유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3당이 공식합의한 상태는 아니지만 실무차원에서 의견을 거의 좁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3당이 대선직후 이같은 내용의 입법화작업을 강행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여론이 크게 제동을 걸지않는한 관철될 것이 확실시된다.
무기명장기채 허용은 「모든 거래는 실명으로 한다」는 실명제의 근간을 정면으로 부인을 하는 조치이다.
무기명 장기채는 일반적인 채권과 달리 유통과정에서 사고 판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물론 첫 매입자와 만기시 돈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름까지 「불문」에 부치기 때문이다. 비실명거래 장기채권이라는 정식이름도 첫매입자와 최종소유자의 이름까지 비실명이라는 점에서 붙여진 것이다.
물론 무기명장기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종합과세를 한시적으로 유보한다는 점에서 전면 폐지는 아니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현정권이 최대 치적으로 꼽고 있는 금융실명제가 정권의 퇴장과 함께 93년 8월 시행된지 4년5개월만에 「무장해제」될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11월 중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실명제 전면유보론에서 촉발된 실명제 논쟁은 주요 3당 대선후보들이 실명제 폐지 또는 전면 유보, 대폭 수정 등의 주장을 펴면서 확산됐으나 최근 IMF 체제가 시작되면서 진화됐었다. IMF는 우리 정부와 합의한 의향서(Letter of Intent) 제36항에서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패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다소의 보완은 가능하지만 금융실명제는 유지돼야 한다」고 못을 박아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도 누차 실명제의 근본을 바꿀 수 없다며 무기명 장기채 도입을 반대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실명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이같은 논의가 급진전한 것일까. 여기에는 상황논리가 주효했다. 국가부도위기로까지 비유되는 「국난」의 상황에서 자금의 정직성을 따지는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IMF 등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금융기구의 태도. IMF의 공식입장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어 엇갈린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무기명 장기채 허용은 한국경제의 투명성제고라는 IMF 등 서방세계가 부르짖고 있는 금융지원의 전제조건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최근 방한한 조셉 스티글리츠 세계은행(IBRD)수석부총재의 발언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스티글리츠 부총재는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실업 등 취약계층이 고통을 겪을 수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IMF나 IBRD 등 국제기구들도 후유증 치료라는 공익을 위해서라면 IMF가 정한 원칙이라도 한시적으로 양보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실제 3당이 추진중인 무기명 장기채도 장기채 발행을 통해 3조원의 자금을 확보, 이를 대량실업에 따른 고용보험 관련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김경철 기자>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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