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이 하루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내일 투표장에 가서 누구든 한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권은 나쁘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무관심은 비난받아야 한다. 투표조차 안한 사람이 앞으로 국정에 대해서 어떻게 왈가왈부 하겠는가.반드시 투표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심으로 당선을 축하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각 후보들도 새 대통령에게 적극 협조하여 국가경제를 함께 일으켜 세우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번 선거가 모든 갈등을 잠재우고 화합의 새 출발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나라의 장래가 암담할 것이다.
87년, 92년 대선을 치르면서 심화된 지역감정과 패거리 의식은 이번 선거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기는 커녕 더 집요해 졌다. 자신이 어떤 후보를 왜 좋아하는가를 말하기보다 어떤 후보를 왜 싫어하는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몸서리를 칠 만큼 싫어하고, 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적대감을 품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같은 그룹」이 모였다고 판단되면 마음놓고 다른 후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그룹에서는 김대중·이인제 후보를,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그룹에서는 주로 이회창 후보를,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회창·김대중 후보를 비난한다.
때로는 그들의 적대감이 너무나 격렬하여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괴로울 정도다. 점잖게 상대를 비난하는 교양있는 그룹에서도 저항감이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라이벌 후보를 비난하는 태도를 보면 양식이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힘든 소문, 조롱에 가까운 험담, 악의에 찬 비방등이 춤을 춘다.
선거의 당사자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당사자를 능가하는 적의를 품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다. 그런 태도는 패거리 의식에서 온다. 지역감정, 계층의식, 학연과 파벌, 자기와 다른 그룹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 등이 얽혀서 대통령선거의 양상을 정도 이상으로 복잡하고 거칠게 몰아가고 있다.
이번 선거는 선거사상 가장 공명한 선거였다고 할 만하다. 각 후보들은 유감없이 싸웠다. 조직이나 자금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고전한 후보도 있고, 정치공작과 정부기관의 자료유출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후보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선거운동은 관권·금권의 개입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TV토론을 통해서 선거의 새 장을 열었다는 점은 특히 평가할 만 하다. 각 후보들이 모범답안을 달달 외워서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고, 정책제시 보다 인신공격에 열을 올려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도 있었지만, 유권자가 후보들의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까지 살피면서 자질을 비교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진전이었다. 토론을 이끌어 갈 수 있을 만큼 후보들의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것도 유권자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유권자들 사이에는 『각 후보들이 마지막 폭탄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재미있는 농담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김대중 후보는 『이번에도 당선 안시켜 주면 다음 선거에 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고, 이회창 후보는 『당선 안시켜 주면 손자들도 군대에 안보내겠다』고 선언하고, 이인제 후보는 『당선 안시켜 주면 선거결과에 불복하겠다』고 선언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각 후보들의 약점을 꼬집은 이 농담은 연말의 여러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을 웃겼다. 내용에 증오가 없어서 누구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함께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 누구도 유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투표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마음을 합쳐야 한다. 개표결과 여전히 패거리의식이 드러나더라도 그것 역시 깨끗이 흘려보내고, 패거리의식을 조장하지 않는 정치를 펴야 한다. 40%내외의 지지율로 당선될 새 대통령에게 100%의 지지를 실어주면서 정쟁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를 국민이 앞장서서 만들어 가야 한다. 내일은 선거일, 화합의 새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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