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성년이 되어 난생 처음 투표를 하기에 이른 너희들을 바라보는 이 아비의 감개가 참으로 새삼스럽구나. 나라가 너희들에게 참정권을 준 것은 너희를 국가공동체의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하였음을 의미한다. 진심으로 축하한다.하필이면 나라살림이 거덜났다고 온통 아우성들인 불행한 시기에 첫 투표를 하게 된 너희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게 느껴지는구나. 별로 신명이 안 나는 일일게다. 하지만 그래도 투표는 해야겠지. 아니, 나라가 어려운 때일수록 5년전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오늘날의 참담한 실패를 거울삼아 외려 더욱 부릅뜬 눈으로 새 지도자의 탄생을 꼭 지켜봐야겠지. 스스로 참정권을 포기한 사람은 나중에 다른 권리를 주장할 권리마저 잃게 되는 법이다.
프랑스에서는 문학적 소양이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한다. 퐁피두나 미테랑이 선거에서 이기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것도 텔레비전 토론에서 선보인, 상대후보를 압도할 만큼의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었다고 한다. 지난번 파리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정말 멋진 나라요 멋쟁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의식은 모든 정신적 가치의 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그것이 결여된 지도자는 자기 국민을 정신보다 물질 우선의, 과정보다 결과중시의 야만적 상태로 끌고가기 십상이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란 양적인 삶이 아니라 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라일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선거에서 내 사랑하는 자식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후보를 선택하게 되기를 바란다.
선거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흑색선전, 인신공격, 폭로 따위의 진흙탕 싸움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반세기 동안이나 나라의 발목을 후진의 상태에 붙들어 매고도 모자라 21세기의 목전에서까지 맹위를 떨치는 걸 보면 그것들의 목숨은 참으로 질기기도 하다. 선입견이나 편견에 눈이 먼 우리 어른들은 오늘날까지 양치기 소년들의 거짓말에 번번이 잘도 속아왔다. 하지만 미래를 향해 가슴이 활짝 열려있는 너희들 젊은 세대는 마을 주민 전체를 집단치매의 상태로 끌어내리려는 그 못된 양치기들에 넘어가지 말아라.
어렸을 적, 시골집에서 닭을 기른 적이 있다. 좁은 닭장 안에서 닭들은 노상 싸움질로 세월을 보냈다. 모이를 두고 싸우고 암탉을 놓고 싸웠다. 큰 놈이 작은 놈을 괴롭히고 힘센 놈이 힘없는 놈한테 못살게 굴었다. 그러다 어느 한 놈한테서 탈장의 징후가 비치면 모든 닭들이 우우 그 놈을 뒤쫓아다니며 끈덕지게 똥구멍을 쪼아댔다. 한 놈을 집중공격하는 그 동안만큼은 닭의 무리에 단결과 평화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탈장된 닭이 죽고 나면 무리는 또 다시 뿔뿔이 흩어져 다음 공격목표가 나타날 때까지 서로 쫓고 쫓기며 싸움질하기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원시부족들은 공동체의 안녕과 단결을 위해 희생의 제물을 필요로 했다. 인신공희는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된 아주 묵은 관습이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원시부족사회가 희생물을 정하는 기준이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가장 힘없는, 그리고 가장 흠결없는 처녀나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너희들은 부디 기억하기 바란다.
신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혈통의 순수성을 잃고 이방의 습속에 오염되었다는 이유로 사마리아 지방사람들을 멸시하고 차별하였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본받으라고 가르치셨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대한민국 영토 안에는 혈통과 습속이 다른 사마리아 지방 같은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주의, 지역감정, 지역차별 따위야말로 나라 망치는 원흉이며 원시의 야만으로 퇴보하는 지름길이다. 그것들을 조장하는 입으로 통일을 운운함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내일의 역사적인 선거에서 너희들의 신성한 한 표로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을 넘어섬으로써 우리가 최소한 닭들보다는 우월하고 도덕적인 존재임을 증명함은 물론, 나아가 21세기 통일 한국시대를 희망으로 맞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를 이 못난 아비는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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