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화적인 키치중독자나 미학적 룸펜은 내 소설에 없다”/생에대한 따뜻한 시선·연민/쉼표없이 달려간 냉정한 서술/“삶의 막막함을 한꺼풀 벗긴다”작가 하성란(30)씨는 집요하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남편이 5개월째 실종된 후 차를 몰고 하룻밤 사이 경인고속도로를 4번씩 왕복하는 여자, 10년째 은행지점 창구에 앉아 남의 돈을 세는 은행원, 8년째 잡지사 미술부에서 레이아웃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작품의 주인공처럼 그는 집요하게 자신만의 소설미학을 구축해 나간다. 그가 등단 2년이 채 안돼 그간 발표한 7편의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루빈의 술잔」(문학동네 발행)은 그 결실이다.
하씨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자칫 지루하게 여길 정도의 치밀한 묘사, 대사의 구분 없는 서술, 현재형 표현으로 일관한다. 「사람들이 떠나도 집은 여전히 기억을 담고 있다」는 그의 표현처럼 그의 이러한 서술은 「상실감」과 「결락감」이 지배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의식을 사진을 찍듯이 담아낸다.
소설이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혹은 대중가요나 팝송에서 빌려오는 이미지로 내용이 채워지고 또 그만큼 가벼워지는 여타 젊은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비교할 때 하씨의 소설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회적 문화에 매혹당한 키치 중독자나 과감하게 자본주의의 일상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을 영위하는 미학적 룸펜의 모습은 그의 소설에서 보이지 않는다』(문학평론가 신수정).
다른 작가처럼 하씨 역시 현대 도시인의 파편화한 삶을 소설로 다루지만 그는 자신만의 소설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흔히 현학적 포즈를 드러내는 장치로 쓰이는 쉼표(,)를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단문체의 묘사, 냉정한 서술은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지적처럼 「소설에서 고의적으로 심리주의적인 깊이를 제거했기 때문에 산뜻하다」. 『여자의 발이 자꾸 꺾인다.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는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같다. 여자는 눈을 감는다. 그러자 엘리베이터가 내는 마찰음이 귓속으로 파고들어 곧 여자의 머릿속에 「쓱쓱」내지는 「썩썩」이라는 글자로 형상화된다』(「지구와 가까운 소행성과의 랑데부」중에서).
하씨가 즐겨 비유하는 「통조림」 같은 일상, 거기에서 탈출할 방법은 그러면 어디에 있을까. 그가 제시하는 것은 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연민이다. 하지만 그 연민조차도 작가는 섣부른 희망의 형태로 드러내지 않는다. 막막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작가의 수공작업 같은 묘사를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막막함은 걷히고 그 이면이 드러난다. 「우주선 니어호는 3년간 20억킬로미터를 날아가 에로스라는 소행성을 만나게」(「지구와 가까운 소행성과의 랑데부」중에서) 되는 것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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