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텔레비전 토론도 막을 내리고, 이제 투표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IMF시대에 투표를 잘 못하면 손가락이 아니라 목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번 선거전을 차분하게 정리해 본 뒤 투표에 임해야 한다.텔레비전 토론에서 후보자들은 상대 후보의 주장을 폄하하면서 늘 「교과서적」이라는 말을 썼다.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특정 후보나 정당이 국민을 설득하는 통로는 대중매체, 대중집회 및 구전 홍보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세가지 통로는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설득의 주된 통로인 대중매체는 비용이 적게 들뿐만 아니라 담론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유권자가 추가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는 통로가 바로 구전홍보다. 후보나 정당은 구전홍보를 통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유권자는 대중매체나 구전홍보를 통해 정보를 얻지만, 혼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는 불안감을 느낀다. 유권자는 자기 생각이 올바른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럴 때 유용한 통로가 대중집회다. 유권자는 대중집회에 참여하여 특정 정견이나 후보에 대한 군중의 호응도를 직접 확인한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문제 가운데 먼저 지적할 것은 대중매체가 그 구실을 스스로 왜곡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에 비로소 텔레비전 토론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건 큰 진전이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형식적인 진전에 지나지 않는다. 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언론의 공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점에 있어서 우리 언론은 여전히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 언론사의 경우 특정 사건의 비중을 과장하거나 축소하기를 밥먹듯이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미국의 뉴스 전문업체 CNN은 방송운영지침에 『우리는 뉴스를 보도한다. 결코 뉴스를 만들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것은 대중매체가 공히 지켜야 할 철칙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뉴스를 창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권까지 창출하고자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러 유력한 언론사가 그런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 두번째 문제점으로, 각 당이 구전 홍보라는 통로를 철저히 악용한 사실을 들 수 있다. 「흑색선전 기승, 대선 막판 혼탁」 「막바지 상대 비방 판친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 홍보단 가동」 등의 신문기사 표제가 구전홍보의 폐해를 웅변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각 당은 대중매체를 통해 차마 말할 수 없는 내용을 구전 홍보를 통해 마구 퍼트렸다. 각 정당은 구전홍보를 위해 택시 운전사, 보험 외판원 외에 심지어 점술인까지 동원하고, 이들에게 거짓말을 믿게 하는 요령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구전홍보로 전파하는 내용은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지난 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배설을 통어하지 못해 바지를 버렸다는 헛 소문이 돌더니 이번에는 다른 후보를 상대로 꼭 같은 거짓말이 나돌았다. 필설로 밝히기 어려운 흑색선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난무하고 있다.
구전홍보의 악용과 관련하여 우리는 특히 두 가지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대중매체가 의도적으로 구전홍보의 내용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 올리고 기정사실화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중매체는 구전 홍보된 내용의 사실 여부를 점검할 의무를 일찌감치 외면했다. 스스로 공론 형성의 주도자이기를 거부한 셈이다.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먼, 대중매체의 그 의뭉함을 관계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둘째는 이번 선거에서 공당이 구전홍보라는 통로를 지역주의와 연결시킨 사실이다.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구전홍보가 조직적으로 유포되었다. 「누구를 찍으면 누가 당선된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주장은 구전홍보에 머물지 않았고 후보 스스로 국민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나라는 특정 후보의 것도, 특정 정당의 것도 아니다. 특정 언론사의 것은 더욱 아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하자면,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구전 홍보의 덫에서 빠져 나와, 지역주의의 올가미를 벗어 던질 때, 비로소 우리 정치는 한 단계 선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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