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책임 추궁보다는 IMF조건 범위내서 금융·세제지원 등 통해 기업 투자의욕 높일때IMF사태에 대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정부를 탓하고 재벌기업을 탓한다. 정치권의 정부질타는 더욱 가관이다. 기아사태가 발생했을 때 기아 경영층과 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사태의 해결을 늦춘게 누구인가.
물론 이번 사태의 제일 큰 책임은 뭐니뭐니해도 방만한 투자를 하다 거대한 빚을 진채 뒤로 나자빠짐으로써 국내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한 부실 대기업들에게 있다. 특히 기업정리를 지연시킴으로써 이번 금융위기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기아사태, 그 중에서도 김선홍 회장을 비롯한 기아경영층의 책임은 두고두고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에 동남아 금융위기를 눈앞에 보면서도 시장경제원칙에 너무 의존해 한보와 기아사태를 적기에 해결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고 과학적인 신용평가의 기준없이 지나치게 대출을 해준 금융권의 책임 또한 막대하다. 그러나 책임만 따지고 있을 수는 없다.
특히 당분간 우리 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하는 대기업을 무차별적으로 매도하고 사기를 꺾는 일은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IMF가 내세운 조건을 보면 그것들이 분명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고 우리 스스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몇가지는 중장기적인 처방으로는 옳으나 지금 당장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실물부문이 건실한 우리경제에 2.5%의 낮은 경제성장률을 강제하고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당장 50%이상으로 올린다든지, 대기업의 기업 지배구조의 개혁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조항, 수입선 다변화금지조치 등이 그 예이다. 이런 것들은 IMF의 대주주로서 막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우리를 길들이기 위해서 이번 외환위기를 조장했고, 이번 사태는 우리 대기업들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패권주의의 일환이라는 음모설이 계속 떠도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당면 목표는 하루빨리 이 위기를 벗어나 IMF관리체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출을 늘려 외환보유고를 높이는 것이다. IMF구제금융은 달러외채를 갚아 단기적인 금융위기를 넘기는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경제의 신인도를 높이고 원화가치를 정상화시킴으로써 다시 정상적인 성장궤도로 진입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출증진만이 우리 경제를 다시 원래의 성장궤도로 올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경제의 견인차역할을 해야 할 기업들의 기를 살려 경제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방만한 문어발식 투자, 과다한 차입경영과 불투명한 족벌경영 등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대기업들이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까지 무시할 필요는 없다. 결국 IMF체제하에서 단기적으로 국내경제를 지키고 우리의 경제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것은 대기업 뿐이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다른 나라의 기업들과 경쟁해서 이겨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대기업이 우리의 대표선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들이 궁극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이번 IMF에서 제시하는 구조조정의 조건들을 이행하면서 경영혁신을 꾸준히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대기업들이 이러한 노력을 해나가는 것을 계속 주시하면서 국제무대에서 달러를 벌어오도록 성원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IMF관리체제로부터 하루 빨리 해방되는 길을 찾기 위해 온국민이 합심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한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업을 살려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IMF 조건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단의 금융, 세제 및 행정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월드컵축구 예선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 경제의 대표선수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대기업들 또한 IMF에 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부실계열 기업들을 정리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함으로써 기업경영의 효율성과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자구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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