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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위의 선택/김병주 서강대 교수(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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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위의 선택/김병주 서강대 교수(화요세평)

입력
1997.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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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발전에대한 비전 인생의 역정…/위기의 한국 지도자후보 선택기준은 있다세상에 먹고 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일이 있는가. 음식·옷·집, 동양식으로 말해서 의식주가 인간의 기본 생활욕구이며 이를 충족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나라살림이 얼마나 넉넉하냐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보다도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의 수와 질이다.

각 개인은 저마다 이익을 챙기려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의 공익에 이바지하게 된다는 이기심의 자연조화론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도 경제활동인구가 공동체의 핵심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시장이 커지고 분업이 발달함에 따라 직종이 다양해지고 기초경제활동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다. 좁은 국내시장을 벗어나 세계시장과 거래하는 일이 중요해질수록 우리끼리의 방식으로 통하던 국내제도와 관행이 국제기준에 맞도록 수정되고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공동체가 커지면 직접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고 이들의 지도역량에 따라 공동체운명이 좌우되었던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성공한 정치지도자는 위인으로 추앙되지만, 기초경제활동인구의 중요성은 영원한 것이다.

정치지도자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대 흐름을 바로 읽어 나라 안팎의 안보와 질서를 확립하고 국민경제를 풍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민에게 따뜻하되 때로는 엄하게 꾸짖으며 공감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을 향해 역량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요즘 한국인의 눈에 비친 정치인 모습은 어떠한가. 일정한 직업 없이 무위도식하는 건달패, 국민에게 부담주는 방해꾼, 국민을 현혹하여 국정의 최고자리를 노리는 권모술수꾼, 최고 자리에 오른 다음 억만금을 챙겨 숨기는 탐욕의 화신이라면 지나친가. 역대대통령의 별칭을 「건국」으로 시작해서 「돌」 「물」하고 무엇으로 끝내는 요즘 사람들의 험구는 다음 대통령을 또 무엇으로 폄하할 것인가. 그러고 보면 다음 대통령이 중요하다. 국제통화기금(IMF)지원금융을 받을 만큼 중병 걸린 경제, 벼랑에 선 나라 살림을 생각하면 차기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중차대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대상이 끔찍하게도 환상적이다. 중대한 국면마다 삭발해 CNN뉴스를 타고 세계만방에 한국정치수준을 홍보하는 군소정당후보는 그렇다치고 3대 정당후보들마저 이런 저런 흠집이 있어 유권자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TV토론 역시 치졸한 상호비방으로 점철돼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면 무엇을 선택기준으로 삼아야 하나.

첫째로 후보의 인생역정을 살펴보아야겠다. 득표공작 목적으로 표 얻을만한 공약을 모두 담다보니 정당마다 특색있는 정강이 없고, 정당은 후보중심의 패거리 모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후보가 국민경제활동에 보탬이었나 부담이었나, 국민의 기본 의무를 다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로 후보의 가족과 주변을 살펴야겠다. 세상소문의 허구를 감안하더라도 그간 대통령마다 부인, 자식, 친척이나 주변사람들에 휘둘려 국정의 혼미를 초래했다. 후보 주변인들의 면면을 둘러보아야 한다. 불빛 찾아 모이는 부나비 같은 엽관운동자들의 구성을 보면 후보의 자질이 보인다.

셋째로 사람은 애향심과 애교심을 간직하는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애향심을 정략적 지역할거주의로 변질시켜 사회결집력을 훼손시키는 일은 금물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연고지역의 출산율을 높여 유권자수를 늘리는 것이 최선의 선거전략이다. 이는 들쥐들의 전략일게다.

넷째로 하루하루 추가 IMF지원이 아쉬운 국가파산위기의 벼랑 끝일수록 국제화시대의 국가발전비전이 뚜렷해야겠다. 북한처럼 폐쇄적 자급경제냐 아니면 세계경제와 연결된 개방시장경제로 되살아나느냐가 목전의 선택이다. IMF요구조건 대부분은 한국 스스로 이미 시행했어야 할 내용이다. IMF뒤에 있음직한 미국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혐오하도록 국민심리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한 점 결함 없는 사람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선택은 가능해진다. 드러난 결함이 가장 경미하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고통분담으로 경제난국을 수습할 지도자를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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