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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복제자물쇠가 풀리고 있다/크래커X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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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복제자물쇠가 풀리고 있다/크래커X를 잡아라

입력
1997.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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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0대,별명 쉐어웨어킬러,죄명 SW파괴/소프트웨어 복제방지장치를 파괴하는 130여개 크랙파일을 온라인에 뿌려대고 450여명 킬러팀에 크랙제작법까지 강의/사이버세계의 해적을 수배한다나이 20대 초반, 별명 쉐어웨어 킬러, 죄명 소프트웨어 파괴죄, 활동공간 PC통신 및 인터넷.

100개가 넘는 소프트웨어(SW)의 복제방지장치와 고유등록번호체계를 파괴, SW 불법유통을 조장하는 유령의 「크래커X」를 잡기 위한 「수배령」이 사이버세계에 내려졌다.

크래커X는 프로그램 무단복제를 막기 위한 장치와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크랙을 닥치는대로 만들어 파일형태로 온라인망에 대량살포한다. 크래커X는 지금까지 국산 SW 40여개를 포함, 130여개의 크랙파일을 만들어 뿌렸다. 크래커X는 온라인에서 구하기 쉬운 쉐어웨어(shareware·일정기간 사용해보고 구입하는 한정판 소프트웨어)를 대상으로 크랙을 일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이를 구해 SW를 자유자재로 복사, 공짜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SW를 돈주고 살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SW 개발자나 개발회사는 제품 판로가 막혀 개발비도 못건질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된다.

전산망에 침입해 자료를 훔치거나 훼손하는 네트워크 크래커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구속된 경우는 몇차례 있었다. 하지만 SW 크래커들은 온라인망을 통한 추적이 어렵고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만 처벌되기 때문에 정체가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PC통신과 인터넷을 이용할 때 전화요금을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통신요금계산기(A’clock)를 개발한 프로그래머 전성국(34)씨는 최근 인터넷을 통한 프로그램 판매를 중지했다. A’clock 크랙파일이 통신망에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6월에 개발된 이 프로그램은 3개월간 300여개나 팔린 인기 제품이었다. 그러나 크랙파일이 나돈 10월께부터 판매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전씨는 추적끝에 한국통신이 운영하는 PC통신 인포숍에 A’clock을 비롯, 크랙파일이 무더기로 유통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범인은 바로 20대의 크래커X.

벤처기업인 나모인터랙티브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인터넷 문서편집기인 나모웹에디터의 올해 매출액을 5억원으로 잡았으나 크랙파일 때문에 5분의 1도 못건질 판이다. 나모웹에디터는 올해 세 번의 개정판이 나왔지만 번번이 크랙을 당했다. 개발자와 크래커X가 숨바꼭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거원시스템이 멀티미디어 통합 음악 플레이어인 제트오디오를 7월 네티즌에게 선보인 뒤 3차례에 걸쳐 신경전을 펼쳤다. 출시 한달만에 크래커에 의해 비밀번호체계가 파헤쳐져 튼튼한 「자물통」을 다시 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이틀만에 풀리고 말았다. 무장한 장정 열을 두고도 도둑 하나를 못막은 셈이다.

거원시스템은 암호체계를 강화하고 크랙을 시도하면 프로그램 자체가 소멸되도록 했다. 그러나 크래커X는 이틀 후 간단하게 비밀체계를 알아낸 뒤 크랙파일 안에 비아냥 섞인 글까지 적어놓았다. 『잔머리를 굴려 자물통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멀었군요』라는 조소섞인 글을 본 직원들은 분노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크랙파일로 인해 프로그래머의 길을 포기한 사례도 있다. 컴퓨터의 각 코너를 쉽게 찾아주는 프로그램 「Mdir」를 91년 만들어 천재 소리를 들었던 최정한(27)씨는 현재 지방에서 컴퓨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씨는 개정판을 수차례 내봤지만 그때마다 크랙파일이 나돌아 큰 손해를 봤다. 최씨는 『세상에 못여는 자물쇠가 존재하지 않듯이 크랙파일 없는 SW도 없다. 하지만 크랙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개발의지가 꺾인다』고 말했다.

이밖에 PC통신 접속프로그램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큰사람정보통신의 「이야기」와 워드프로세서인 한글과컴퓨터의 「한글오피스97」도 크랙을 당하기는 마찬가지. 한글과컴퓨터는 크랙을 하도 당해 아예 복제방지장치를 없애 버렸다.

국내에 전문 크래커는 10여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직을 갖춘 크래커의 출현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래커X는 통신망에 「쉐어웨어킬러팀」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450여명의 회원을 모집, 운영하고 있다. 그는 회원들에게 크랙파일을 나누어주고 심지어 크랙 제작강의까지 한다.

회원들에게 잠금장치를 풀고 싶은 SW를 신청받아 크랙파일도 만들어준다. 크래커X는 주로 인포숍과 지방 PC통신망에서 활동하고 크랙파일은 자료실이나 전자메일을 통해 유통시킨다.

이처럼 크래커X가 날뛸 수 있는 것은 네티즌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PC통신이나 인터넷 게시판에는 특정제품의 크랙파일을 구하거나 제작해 달라고 요청하는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한 크랙파일을 모아 자랑스럽게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홍보하는 철없는 네티즌도 있다.

전문가들은 『크래커는 개발자를 골탕먹이는 재미로 크랙을 일삼으며 영웅심에 도취되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전성국씨는 『크랙은 전문적 지식보다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치면 초보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개발자들의 법적 대응력이 약한 것도 크랙파일이 범람하는 원인중의 하나. 대부분의 SW 개발사는 크랙파일을 감시할 담당자를 배치할 여력이 없다. 설사 발견했다해도 이리저리 숨어다니기 때문에 잡기가 쉽지 않다. 나모인터랙티브 김흥준(30) 사장은 『개발에 온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크랙에 신경쓰다 보면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크래커는 전산망법과 프로그램보호법에 의해 3년 이하의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소없이는 처벌이 불가능한 친고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시간에 쪼들리는 개발자들은 대부분 고소를 하지 않는다.

미국 등 소프트웨어 선진국에도 크래커는 많다. 그래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이유는 정품 사용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들은 『사용자들이 정품을 써줘야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살아나고 크래커들도 줄어들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나모인터랙티브 박흥호 부사장/“크랙파일 때문에 SW개발의욕 잃어요”

『크랙은 소프트웨어(SW) 개발회사에 쥐약만큼 치명적입니다. 크랙파일이 나돌면 끝장이지요』 나모인터랙티브의 박흥호(34) 부사장은 당장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다. 3월에 내놓은 인터넷 홈페이지 편집기 나모웹에디터가 크랙파일로 인해 팔리지 않아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땀흘려 SW를 개발해 놓으면 한쪽에선 도둑질해서 씁니다. 우리나라는 크랙파일의 천국입니다. 조금만 신경쓰면 온라인망에 공짜가 널려있는데 누가 돈주고 사겠습니까』

박부사장은 『크랙파일을 발견하면 분노와 허탈감에 빠져 괴로워하지만 결국은 체념하게된다』고 말했다. 잡기도 힘들고 잡아도 이미 유통망에 퍼질대로 퍼졌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박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불황과 맞물려 국내 SW업계는 조만간 무더기로 도산하고 만다』고 경고했다. 박씨는 크랙 퇴치방법으로 경찰내에 크랙전담팀 구성을 주장했다. 온라인에 꾸준히 경고메시지를 띄워 크래커에 겁을 주고 네티즌들에게는 정품사용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랙’이란

영리목적으로 판매되는 소프트웨어는 불법복제를 막기위해 방지장치(LOCK―KEY)를 사용하거나 고유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기능을 설치한다. 록키가 제것이 아니거나 등록번호 역시 진짜가 아니면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는다.「벽에 금을 내다」는 뜻의 크랙(CRACK)은 바로 이 검사부분을 삭제하거나 마비시켜 아무 록키나 등록번호를 넣어도 진짜로 판단하게 만든다. 프로그래머들은 매우 복잡한 숫자조합으로 복제방지장치와 등록번호체계를 만들지만 크래커들은 수십, 수백회 실험을 반복해서 비밀체계를 찾아낸다. 한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며칠이 소요되기도 한다.

크래커들은 남들이 깨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짧은 시간에 풀수록 영웅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크랙훈련에 쏟아 붓는다. 또한 크래커들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오류를 찾아내는 목적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인 소프트아이스, 코드뷰 등을 이용한다.<전국제 기자 stevejun@koreal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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