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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말의 보도블록 교체(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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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말의 보도블록 교체(사설)

입력
1997.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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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면 크고작은 도시 곳곳에서 보도블록 교체공사가 벌어져 보행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블록을 새 것으로 바꾸어 보도가 말끔하게 단장되는데 싫어 할 이유는 없지만, 몸과 마음이 바쁜 세모에 연례행사처럼 공사판이 벌어지니 그 까닭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엄동설한에 공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을텐데, 이맘때면 앞다투어 공사판을 벌이니 말이다.걷어내는 보도블록을 보면 멀쩡한 것들이다. 그것은 다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버려진다. 그런 쓰레기는 매립 외에는 달리 처리방법이 없어 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안 바꾸어도 될 것을 바꾸고, 멀쩡한 자재를 버리는데 또 돈이 드니 이런 이중 삼중의 낭비가 또 있을까. 가뜩이나 매립지가 부족해 수십㎞를 싣고가야 하는 형편이 아닌가.

해당 자치단체들은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해 통행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한다. 금년예산으로 책정된 돈을 연내에 쓰지 않으면 불용예산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되면 내년에는 같은 항목의 예산을 타내기 어려워 웬만한 곳이면 블록을 교체해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은 지난해 예산편성 때부터 불요불급한 항목을 만들어 넣었다는 얘기가 된다.

불요불급한 곳에 예산을 퍼붓기는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서울대에서 있은 대학산업기술지원단 기술평가지원처 발족식에서는 20여명의 대학교수들이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관련 예산 낭비사례를 발표했다. 여행경비와 회의비를 줄여 18억원을 남겼더니 담당 공무원이 『당신이 뭔데 멋대로 예산을 깎아먹느냐』고 질책했다는 사례가 폭로됐다. 환율 폭등으로 실험기기 구입을 연기했더니 담당 사무관이 『내년에는 예산항목이 없어지니 필요 없는 것이라도 사라』고 권고한 일도 있었다. 이런 예산을 관장하는 공무원들은 예산 집행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접대비가 영수증으로 처리되어도 눈감아준다고 한다. 자치단체들의 경쟁적인 보도블록 교체공사도 담당 공무원들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국가경제가 결딴나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난 극복에 작은 힘이나마 모아보자고 나서는 판이다. 언제 석유공급이 끊기고 곡물수입이 중단돼 상상할 수도 없는 혼란과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지 모를 위기상황이다. 앞장 서 절약과 내핍을 솔선수범하면서 좀더 참고 견뎌달라고 읍소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들이 국민의 혈세를 재원으로 한 예산을 공돈처럼 취급한다면 우리의 앞길은 멀고 험난하다.

지금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에는 이 고난의 행군을 이끌어 나갈 책무가 있다. 정부와 모든 공공기관에 쏠려있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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