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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선진화모델/안병직 서울대 교수·경제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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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선진화모델/안병직 서울대 교수·경제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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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예년처럼 난동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IMF의 한파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하기 때문이다. 항간에서는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것이 국치라고도 하지만 더욱 한심한 것은 그것을 불러오게한 정부의 무능과 국민의 방종이다. 정부나 국민중 어느 한쪽에서라도 제 일을 제가 알아서 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그러면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 4마리 용중의 하나라던 나라가 어찌해서 이 꼴이 되었는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근대화에서 선진화로 이행하는 과도기인데 정부나 국민이 이 과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는 이미 근대화모델은 낡아서 작동하지 않는데 선진화모델을 제시하지 못했고 국민은 근대화단계의 의식과 생활양식에 머물러 있을 뿐 선진화단계의 의식과 생활양식으로 자기변신을 하지 못한 것이다.

현 정부는 스스로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세계화를 국정의 기본방향으로 내세움으로써 갈팡질팡했고 국민은 출세욕에 눈이 먼 입시경쟁이나 과소비와 쓰레기의 배출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선진화의 내용이 무엇이며 선진화의 단계에서 국민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이 무엇인지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서 말이다. 박정희씨는 비록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기는 했으나 근대화모델을 세워서 국가근대화에 성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근대화가 시대적 소명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근대화모델을 정립하여 과감하게 추진하였다는 것이다.

60년대의 한국은 그 문화수준에 비하여 너무나 가난했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값싼 양질의 노동력은 있는데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여 1인당 소득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여기에서 그는 국내의 노동력과 외국의 자본 및 기술을 결합시켜 조립·가공산업을 일으키고 그 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면 국가를 부강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근대화모델이 바로 수출지향공업화였다. 여기에서 정책의 중심축은 공업화와 수출입국이었다. 그리고 「조국근대화」는 근대화모델을 실현하기 위한 이념이었고 군대, 통일주체국민회의, 새마을운동 및 유정회 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는 근대화모델을 실천하기 위한 권력체계였다. 따라서 근대화모델은 이념, 정책 및 권력체계 등이 유기적으로 갖추어짐으로써 실천가능했던 것이다.

근대화모델이 경제발전을 이룩했으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크게 억압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60년대에도 한국의 임금수준이 선진국의 10분의 1 이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2분의 1내지 4분의 1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값싼 양질의 노동력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도 실현하고 고임금도 실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싫건 좋건 한국을 선진화의 단계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선진화모델을 정립해야할 필연성이 있다.

선진화모델의 정립에 있어서는 적어도 두가지의 필요조건이 있다. 첫째는 고임금에 필적할 만한 노동생산성의 향상이요, 둘째는 민주주의와 통제경제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개발계획을 그만두고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정책수단은 기술개발과 직업훈련이고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위한 정책수단은 금융개혁과 산업조직개편 등의 제도개혁이다.

선진화의 단계에 있어서도 근대화의 단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는 국제협력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러나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외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개발, 직업훈련 및 제도개혁등 우리 스스로의 새로운 의식과 생활양식의 정립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또 위와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교육입국도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각 후보들은 여러가지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공약중에는 없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막상 그 핵심적 자리를 차지해야할 선진화는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선진화를 핵심에 두지않은 공약은 공약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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