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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3일의 자문자답/이문희 본사주필(선택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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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3일의 자문자답/이문희 본사주필(선택의 길목에서)

입력
1997.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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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필연일까. 이 난국에 대선이란 난제를 풀어야 하다니, 천근 같은 두 짐을 진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고 힘겹다. 어느 쪽을 봐도 시원한 해답의 징조를 볼 수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일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일임을 잘 안다. 우리 국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역경에 역경을 겪으면서도 한때는 「기적」소리를 들을 만큼 능력있고 착한데가 있다. 잠시 우쭐대다가 지금 큰 코를 다치고 있지만 이 판국에서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확신도, 자신도 있다.우리는 지지리도 지도자 복은 없던 백성들이다. 이게 좋으면 저게 나쁘고, 이걸 잘하면 저걸 못하고 그러다 끝내는 이것 저것 다 합친 것 같은 지도자를 만났다. 큰 복은 하늘에서 내리고 작은 복은 사람 하기 탓이라는데 하늘의 노여움인가, 우리의 잘못이었던가. 한번 단단히 짚어보고 넘어갈 때다.

화급한 문제는 며칠뒤 대선이란 난제를 잘 푸는 것이다.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난국은 지금 같아선 한두해로 사단이 끝날 일이 아니다. 절치부심 인내를 갖고 끈질기게 밀어붙여야만 가능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 출발이 중요하듯 이 난국해소에도 출발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시점이 우리에겐 12월18일이다. 이날 뽑힌 지도자가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경영해 나가느냐에 따라 이 난국은 손쉽게 풀리 수도, 고통의 나날들이 턱 없이 오래 갈 수도 있다.

그러니 잘 뽑아야 한다. 92년과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사심을 버리고 사연을 물리치고 뽑아야 한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은 컴퓨터의 법칙만은 아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단연 미디어 선거이다. 그간 TV토론이란 것만도 무려 20여차례나 있었다. 중앙선관위가 조사한바로는 79.8%가 TV를 보고 후보를 결정했다고 한다. TV는 이번 대선에서 분명 큰 몫을 했다. 한데 우리의 유권자들이란 그렇게 간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이 될지 모르지만 상당부분 이미 패거리, 패거리로 딱 갈라져 있다. 어떤 동기, 어떤 연에 의한 것이건 우리 대선이 난제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을 깨야 한다.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21세기형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이번 선거이다.

선택의 기준은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안점은 있을 수 있다. 바탕을 봐야 한다. 능력이랄 수도 있고 자질이랄 수도 있다. TV는 이점에서 참고가 됐다. 답변 내용에서, 그 전개에서 심지어 자세에서 조차 엿볼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다음은 진실성이다. 정직한지,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지, 믿을만한지를 면밀히 봐야 한다. 이것은 유세나 TV보다는 과거의 기록, 실적등에서 더 소상히 알 수 있다. 유권자들이 품을 들여 연구해야 할 대목이다. 끝으로 비전이다. 온나라가 경제다 위기다 하고 눈앞의 일에 코를 박고 있을 때 이 4,000만의 나라가 방향을 제대로 틀고 있는지를 내다봐야 할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판단과 통찰이 탁월해야 한다. 21세기도, 선진국도, 통일도 바로 이런 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음 대통령에게는 어쩌면 영광보다는 가시밭길이 널려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느 원로의 말대로 「인기없는 정책」을 끝도 없이 밀고 나가야할지 모른다. 백년대계의 철학과 혜안, 확고한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도전은 예삿것이 아니다. 고통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를 바꾸라는 것이다. 그것도 세계의 룰에 맞게 바꾸라는 것이다. 투명하게, 경쟁을 공정하게 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바탕부터 뜯어 고치는 일이다. 새 대통령은 이런 일을 해내야 한다.

시련의 극복이 아니라 나라를 개조할 때다. 허세, 거품을 걷어내고 좀 더 세련되고 지적인 국가로 변신시킬 때다. 지금 나라가 처한 상황이 기존 통념을 깨야 극복되듯 우리의 해묵은 선택의 기준들도 깨야 한다. 그리고 진솔하게 자신에게 다시 물어봐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진정 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아직 시간은 있다. 투표일까지 이런 스스로에게의 물음을 수없이 되풀이 해도 좋다. 패거리 의식에서 훨훨 떠나 자신에게 까다롭게 질문을 던지고 고뇌 끝에 얻은 결론으로 투표장에 가야 한다. 새 대통령이 할일은 너무 크고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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