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파산해도 미국은 대수롭지 않다”/“부실금융기관 정리않는한 신뢰회복 못해/후보,재벌·금융은 외면한채 재협상 논란/반미감정·미제 불매운동에 상황 더 악화”한국이 국제적인 「신뢰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국제금융계의 태도는 차갑기만 하다. 더구나 협조융자를 제공키로 했던 미국과 일본도 선뜻 돈을 내놓을 태세가 아니다. 정부 정치권 국민 등 한국의 경제주체들이 IMF 권고안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채 회피하려는 것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1일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 「협박조의 추가지원」을 요청했다며 「한국의 착각」을 꼬집었다. 한국경제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 세계경제도 타격을 받는다며 지원을 요청했으나 미정부와 금융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나아가 미국 정·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한국의 위기는 궁극적으로 『한국만의 붕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프린스턴대학의 피터 케넨 박사는 『미국은 한국에 대한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다른 국가들에 「자기 잘못에 대해 지원을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자칫 시범 케이스가 될 지도 모를 상황이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11일 한국이 IMF와 약속했던 개혁조치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개혁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지원은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도 이날 한국정부가 일부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구조조정에 머뭇거리는 한 시장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부의 실기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가 일부 금융기관을 폐쇄하고 이들의 대외채무를 떠안기만 했어도 구조조정에 대한 대외적 신뢰가 형성됐을 것이란 얘기다. 외국은 특히 과도한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2개 금융기관을 구제하려는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는 식으로 보고 있다.
시장원리에 따른 금융개혁이 IMF 요구의 핵심 중 하나임에도 불구, 정부가 이를 관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못믿을 건 정책만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는 10일 『투자자들이 한국정부가 발표하는 정보의 진실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 더욱 문제』라고 보도했다. IMF지원 직전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발표와 달리 위험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치권도 불신받기는 마찬가지다. 시사주간지 타임과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등은 한국의 대선주자들에게서도 별로 기대할 게 없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재벌과 금융계의 구조조정 문제 등 근본적인 이슈는 외면한 채 IMF와의 재협상 등 득표를 의식한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IMF구제금융을 국치로 여기는 일부 정치권과 국민의 비이성적인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뉴욕타임스는 11일 구제금융 조건을 「미국의 농간」정도로 여기는 한국내 반미감정과 미제품 불매 운동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나아가 『구제금융 조건은 선진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이 국제적 경기규칙에 따르라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2일 한국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며 구제금융 지원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파산시킬 것인가를 결정할 시기라고 말했다. 어느 쪽이 덜 손해일 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시점이란 뜻이다. 국제적 기준과 요구에 맞추려는 한국의 총체적 노력이 외국에 의해 긍정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결딴날 상황에 와있다.<배연해 기자>배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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