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흑자도산… 국가기반 초토화 위기외환·금융위기가 신용공황으로 치달으면서 기업경영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외환·금융위기가 실물부문을 강타, 이러다가 한국경제의 「공장」이 멈춰버리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실물부문이 초토화할 경우 단기처방에 의해 금융위기를 넘긴다 하더라도 경제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굴지의 조선사인 A중공업은 최근 영국 바이어로부터 척당 5천2백만달러에 계약키로 한 선박 2척의 수출상담에 대해 무산 통보를 받았다. 이 업체는 『한국경제를 믿을 수 없어 유력 외국계은행의 보증을 받아오라』는 바이어의 요구를 받고 백방으로 뛰었으나 보증을 서는 외국계은행을 구하지 못해 결국 수주 포기를 선언하고 만 것이다.
석유화학 대기업 D사는 기업어음(CP)의 금리가 20%를 넘어선 뒤부터 아예 자금조달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이 회사는 또 거래은행 지점별로 대출한도 승인을 받았는데도 지점들이 신규대출을 거절함으로써 자금줄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신용공황」의 여파로 초래되고 있는 기업들의 어려움은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1일 통상산업부가 주요 업종별로 기업들의 자금난 실태를 조사한 「가업자금난 현황 및 대책」에 따르면 기업들의 자금난은 거의 목에 차있는 실정이다. 환율폭등과 금융시장 경색이 겹치면서 수출입업무는 물론 대내 경영활동 자체가 마비되는 양상이다.
기업들이 갖는 위기감은 연일 치솟는 원화환율과 씨가 말라버린 자금 등에 의해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기업들의 최대 관심은 생존자금 확보다.
금융기관의 신규대출 기피로 자금을 새로 확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기존 부채에 대해서는 추가담보 요구와 대출 연장의 거부로 흑자도산이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환은행들의 결제는 거의 중단된 상태여서 무역관련 자금난과 운영자금난이 겹쳐 2중의 어려움에 처했다. 기업체 경리담당자들은 『하루 하루 넘기기에도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직물과 섬유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중소기업 C사의 자금담당 L상무는 『K, J, S은행으로부터 1백억원가량의 차입금을 쓰고 있는데 K은행은 담보의 추가 제출을 요구했고 J은행은 만기자금의 대출연장 불능 통보를 해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S은행은 또 그나마 소액을 추가 대출해주면서 대출금과 동일한 금액의 적금을 대출실행 15일전까지 계약하도록 강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제조업체인 D사는 종금대출금 29억5천만원의 조기상환 요구에 어려움을 겪고있고 전기제품 생산업체인 S사는 시시각각 닥치는 자금상환요구에 하청업체의 어음기일을 3개월에서 5개월로 연장했다.
통산부 관계자는 『실태파악 자체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정도로 업계의 자금사정이 절박하다』며 『일부 기업관계자들은 20일께까지 버티는 것이 1차적인 목표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대로 가다가는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문제』라는 말에 동조하는 기업인들이 급증하고 있다.<이종재 기자>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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