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IMF약효’ 정책일관성이 관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IMF약효’ 정책일관성이 관건

입력
1997.12.12 00:00
0 0

◎정책 갈팡질팡 혼란만 가중/개혁실종 금융부실 되레 악화/노·사·정 혼연일체 위기극복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IMF와의 약속이행 여부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미국 등 외국언론 보도내용과 함께 초기대응 미숙으로 혼란을 가중시킨 태국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신속하게 IMF와의 합의사항을 이행했던 멕시코의 사례 등을 짚어본다.<편집자 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것 자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채 결단력있는 정책을 구사할 때 그 약효는 힘겹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기에 정책의 일관성은 기본이다. 흥분과 우유부단함, 일관성 결여는 더욱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외국의 사례는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230억달러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진행중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벌써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7월 이후 달러화에 대해 50%나 떨어져온 루피아화는 9일 수하르토 대통령 건강악화설이 나돌면서 달러당 484루피아(10%)가 폭락했다. 금융기관의 부실은 오히려 심해져 이미 문을 닫은 은행 16개 말고도 추가도산이 줄을 잇는다.

후계자가 불분명한 상태인 수하르토 32년 장기집권과 족벌체제는 과감한 개혁조치를 취하지 못해 국제사회의 신뢰도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외국계은행들이 계속 대출을 중단, 단기외채 압박에 시달리는 인도네시아 기업은 달러화 사재기를 멈추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인도네시아 금융전문가들은 『IMF 합의이행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철저한 개혁의지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태국도 8월 IMF 긴급차관 170억달러를 받은뒤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당시 차왈릿 용차이윳 총리 정부는 IMF와 밀실협상을 한뒤 뒤늦게 마지못해 가혹한 조건이 담긴 양해각서를 국민에게 공개했다. 당연히 국민들 사이엔 실망감과 울분이 번졌다. 재정적자 해소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유류세를 ℓ당 1바트(30원) 인상했다가 국민의 반발이 심하자 3일만에 철회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갈팡질팡 경제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타농 비다야재무장관 등 각료들은 사표를 내버렸다. 획기적인 민주헌법을 통과시키는 등 정치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11월16일 용차이윳 정부가 퇴진하고 추안 리크파이 정부가 들어섰다. 이와중에서 전직 각료들이 부인 명의등으로 평균 22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재산내역이 공개돼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새 정부는 모든 경제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방향으로 전환, 12월8일 금융회사 56개를 영구 폐쇄했다. 그러나 4개월여의 IMF 대응 혼란으로 인한 고통은 너무도 뼈아픈 것이었고 아직도 앞날은 불투명하다.

리크파이 총리는 『IMF의 요구조건을 피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며 『금융산업 개편과정에서 정치권의 개입을 철저히 막겠다』고 밝히고 있다.

95년 IMF 구제금융으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멕시코는 여야협력과 노·사·정 협의를 통한 국민합의가 중요한 정책수단이었다.

세실리오 가르사 주한멕시코대사는 11월30일자 본보 네오포커스팀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위기상황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신윤석 기자>

◎한국위기 미 시각/구조조정 의지 등 ‘현정권 불신’/단기채무 1,000억달러 공개에 경악/“냉엄한 시장경제 맡기자” 비아냥도

『한국이 중동의 오만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뉴욕의 한 국책은행 고위관계자는 10일(현지시간) 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두단계 더 내리자 이같이 한탄했다. 당장 채무불이행국이 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에도 불구, 경제 위기를 못 버텨낼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후 전세계에 미칠 파급을 우려하고 있다. 위기의 끝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탈출구같았던 IMF의 처방도 안 듣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 행정부를 비롯, 금융계 언론계는 「못 미더운 한국」에서 문제의 출발점을 찾고 있다.

그중 첫째는 한국 정부의 IMF약속 이행여부이다. 「레임덕」에 빠진 정부가 경제 구조조정으로 불거질 한국민의 불만을 추스르며 이를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3일 IMF와의 합의이후 취해진 우리 정부의 자세는 이들에게 벌써 실망감을 안겨줬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긴급자금 조기 지원을 요청했다는 1면 기사에서 한국은 IMF와의 협상시 단기외채를 500억달러라고 밝혔으나 이제 1,000억달러라고 한다며 시종 못미더워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재벌 등 사기업분야에 대한 구조 조정도 의문시한다.

특히 18일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불거져 나온 IMF와의 재협상 목소리는 모처럼 회복돼가던 신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앞서 인도네시아가 모호한 합의내용을 임의로 해석해 독단적으로 움직이는데 당황한 미국과 IMF는 한국과의 협상이 시간을 끌더라도 글자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 못미더워 대선후보들에게 이행각서까지 받은 마당에 나온 재협상 운운은 이들에게 경악스런 일이다.

이와 맞물린 한국내 민족주의적 반미주의 확산도 우려되는 점이다. IMF의 지분을 18%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또한 독자적으로 50억달러 지원을 약속한 미국으로서는 한국에 팽배한 「미국 음모론」에 배신감마저 갖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의 화폐가치 하락사태에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싼 공산품을 앞세운 이들의 수출공세로 인해 미기업이 입을 타격이다. 이가운데 국내에서 IMF반발 성격으로 전개되는 외제 안쓰기같은 캠페인은 IMF를 통해 시장개방을 유도하려는 미국측의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행동이다.

이에따라 「욕 먹으면서 도울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미국내에서 고조되고 있다. 일부 미 전문가들은 『IMF보다는 냉엄한 시장경제 논리에 한국을 맡기는 편이 오히려 경제 구조 개편, 시장 개방 확대를 앞당길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다.<뉴욕=윤석민 특파원>

◎한국위기 일 시각/“예측 불능 혼란상태”

「한국 원화 끝없는 폭락」(요미우리신문) 「국제통화기금(IMF) 쇼크 한국경제가 흔들흔들」(아사히신문) 「한국 국제적 신용회복 요원」(니혼게이자이신문) 「한국시장 IMF 지원후에도 마비」(산케이신문)

11일자 일본 주요 신문이 보도한 한국경제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각 기사들은 IMF의 구제금융 지원 이후에도 한국의 원화가 폭락을 멈추지 않고 금융시스템도 붕괴 일보직전으로 치닫는 모습을 긴박하게 전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정말로 「비상사태」에 돌입했으며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공통된 논조이다.

지난달 한국의 금융위기가 표면화할 때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에 대한 일본의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총리가 한국의 실물경제가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위기만 극복하면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한국경제의 위기가 일본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아는 일본언론도 한국경제의 추이를 연일 주요기사로 다루었는데 역시 비관적인 내용의 기사는 적은 편이었다. 한국국민이 제2의 국채보상운동을 펼치고 있고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고 있다는 등의 기사는 흥미성 기사의 하나로 취급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번주 들어와서 한국경제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급격히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금융기관과 재벌 등의 연쇄도산 사태가 멈추지 않고 원화가 IMF의 자금 지원후에도 오히려 끝없이 폭락하고 있기때문이다. 한국경제는 현재 최악의 악순환을 거듭하며 국가적 위기상황에 돌입했다는 것이 이곳 경제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들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한국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 이에따른 국제시장의 실망감 등을 꼽고 있다. 일본에서는 향후 한국 경제가 실제로 무너졌을 경우의 대응책에 관한 논의가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도쿄=김철훈 특파원>

◎외국언론 보도추이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결정이 내려진 3일을 전후한 시점부터 국내 금융시장이 공황조짐을 보인 11일까지 IMF관계자 및 각국 언론의 시각을 정리했다.<편집자 주>

◇한국은 경제의 근본이 튼튼한 만큼 IMF의 자금지원후 1년 또는 1년반 정도가 지나면 정상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의 1일 콸라룸푸르 기자회견.

◇미 관리들은 IMF가 관치금융 관행에 변화를 강요할 양보조치들을 한국으로부터 받아낸 데 대해 만족해 했다.

―4일자 미 워싱턴 포스트.

◇한국은 정부주도의 개발경제시대를 끝내고 전면적 자유화를 걷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4일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한국은 태국이나 95년 멕시코와는 달리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불균형의 문제가 없다. IMF가 한국에 불필요하게 강경한 조치를 강요했다는 의심이 일고 있으며 이는 잘못일 수 있다.

―4일자 미 뉴욕타임스 사설.

◇한국이 IMF와의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금융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이다.

―캉드쉬 IMF총재의 4일 도쿄(동경) 기자회견.

◇IMF의 지원조건은 매우 가혹한 내용이지만 한강의 기적을 재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경제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5일자 일본 아사히(조일)신문.

◇상황이 바뀌거나 극단의 위기가 발생할 경우 IMF프로그램에 대한 조정이 가능하나 구조개혁 등 프로그램 뼈대에 대한 협상은 없다.

―스탠리 피셔 IMF부총재의 5일 워싱턴 회견.

◇IMF의 구제금융은 댐의 구멍중 한 곳을 막았으나 댐에 대한 압력이 완전히 빠져 나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5일자 미 뉴욕타임스.

◇한국은 IMF구제금융에 대해 굴욕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한국은 근원적인 문제들을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하며 재벌위주의 경제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캉드쉬 총재의 6일자 프랑스 르 몽드 회견.

◇경기침체 요소가 있고 정치적 문제들이 금융위기의 뿌리에 있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IMF의 처방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8일자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

◇18일 한국 대선이 끝난 후 당선자가 IMF의 권고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을 경우 제2차 금융쇼크가 한국을 강타할 것이라는 악몽의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10일자 미 워싱턴 포스트.<정리=박진용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