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안가고 집에서 “한잔”/화병·소화장애 크게 늘어/복권불티·경마장 북적 한탕주의 사행심리도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이후 기업·가정 풍속도에서부터 직장관, 결혼관에 이르기까지 생활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심지어 결혼마저 미루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결혼을 미루는 사태는 당장 당사자의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에다 결혼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예식장 업계는 이같은 경향으로 내년 봄 결혼시즌의 결혼식 예약건수가 올봄에 비해 4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혼이벤트업체에는 이미 11월말부터 신청건수가 30%이상 줄었다. 또 결혼 날짜를 잡은 사람들도 외화절약 분위기 때문에 신혼여행지를 해외에서 국내로 바꾸고 있다.
감원바람으로 근무조건이 나쁘더라도 해고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부서나 아예 지방근무를 희망하는 직장인도 늘어나고 있다. 과거 인기를 누리던 관리·지원부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한 백화점 인사담당자는 『전에는 각종 이벤트나 행사를 주관하는 판촉·광고·기획 등 지원부서가 인기를 누렸으나 요즘은 영업부서가 각광받고 있다』면서 『몸으로 때우는 소위 3D부서가 감원을 피할 수 있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머니가 가벼워지자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었다. 또 양주 등 비싼 술 소비량이 급격히 줄고 맥주와 소주도 업소용보다 가정용 매출이 크게 늘어났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S전자의 임원들도 점심식대를 더치페이로 하고 있다. 찾는 식당도 호텔이나 고급식당에서 설렁탕집으로 바뀌었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맞벌이 부부들 중에는 서로 아껴쓰자는 취지로 출근때 『IMF』라고 인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배우자감은 한동안 「상종가」였던 증권사, 대기업 사원 등에서 실직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무원과 전문직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하고 싶은 배우자로 1월까지 각각 61.1%, 2.8%였던 대기업 사원과 공무원이 최근 조사에서는 각각 2.7%, 26.3%로 반전됐다. 배우자 선택기준도 성격에서 경제력·직업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IMF체제의 칼날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쳐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는 신경질환, 갑자기 열이 치솟는 화병, 소화장애 환자 등이 많아졌다. 특히 직장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40대 남성의 경우 치솟는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잠재적 「화병환자」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복권이 불티나게 팔리고 경마장도 만원이다. 실직에 대한 불안감과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현실이 한탕주의 사행심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연말은 어느 때보다 쓸쓸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지고 트리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불우이웃시설은 찾는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
「IMF 유행어」도 범람하고 있다. 「나는 해고자(I Am Fired)」 「나는 파산자(I Am Fall)」 「나는 바보(I Am Fool)」 「나는 괜찮아(I Am Fine)」 「나는 뛰고 있다(I Am Fighting)」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김동국·유병률 기자>김동국·유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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