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황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내용을 재협상 또는 추가협상해야 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IMF 재협상 문제에 대한 각후보 진영과 정부의 입장, IMF측의 시각 등을 살펴본다.◎한나라당/신인도 추락 더 부추겨 선거운동 이용 말아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11일 밤 충청권 유세도중 숙소인 유성리베라호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 국민회의후보는 국가파산 위기를 몰고올 재협상 주장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후보 외교안보특보인 현홍주 전 주미대사는 『김후보의 재협상 주장은 외환위기의 주요원인인 대외신인도 추락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빚고있다』면서 『뉴욕타임스 등 세계유력 언론과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김대중 후보가 IMF재협상주장을 통해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신의 선거운동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후보의 IMF재협상주장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신문광고를 일제히 내보내 이회창 후보의 「경제안정론」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한나라당 내에는 그러나 신중론도 있다. 재협상 주장이 외환위기를 심화시킨다는데 공감하면서도 협상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는 국민감정 등을 감안, 이를 정치쟁점화하는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회의/국익차원서 제기한 것 지나친 부분 협상 당연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경제파탄의 책임공방에서 밀리자 IMF재협상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재협상주장이 국익차원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선 강조하고 있다. 김원길 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 조순 총재가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전화통화를 가진 것을 겨냥, 『협상상대인 IMF에 재협상용의를 물어보면 당연히 없다고 말할 것』이라며 『오늘 이 순간까지 IMF는 재협상 주장에 어떠한 불평도 표시하지 않고있다』고 주장했다. 김의장은 『IMF측이 문제를 삼는다면 그 대상은 당초 무조건 준수의사를 각서를 통해 밝혔다가 TV토론에서 태도를 바꾼 이회창 후보일 것』이라고 역공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나친 부분에 대한 추가협상은 당연한 일』이라며 『스탠리 피셔 IMF수석부총재도 재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대변인은 『협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국민신당/위기탈출 석달동안은 보완·조정하기 어려워
○…국민신당은 IMF가 우리정부에 요구한 성장률·구조조정·개방속도 등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를 즉각 재협상 대상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민신당은 위기국면 탈출을 위해선 최소 3개월이 필요하므로, 「보완·조정협상」을 하더라도 이 기간이 지난뒤에라야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국민신당은 그러나 외국 언론의 「경고」는 단순히 경제논리에만 기초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IMF협상에 대한 정치권의 국치규정이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우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불필요하게 재협상론을 거론하거나 수치심을 강조해 역효과를 내선 안된다는 것이다. 국민신당은 이와함께 재협상 내지 추가협상을 대선전의 차별화 전략으로 이용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지, 정치권이 국민의 울분을 표로 연결시키려다 보면 IMF와의 대립·마찰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정진석·장현규·홍희곤 기자>정진석·장현규·홍희곤>
◎IMF/골격은 유지… 상황변화따라 조정가능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안의 재협상 논란에 대한 IMF의 입장은 확고하다. 상황변화에 따라 합의의 내용이 일부 조정될 가능성은 있지만 기본 골격은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으로 IMF의 실력자인 스탠리 피셔 부총재는 이미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해두겠다』면서 재협상 논란에 대해 확실한 선을 그었다. 그는 『상황변화에 따라 IMF프로그램의 목표를 조정해나갈 것』이라며 『프로그램은 계속 재협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셔 부총재는 그러나 『구조적 개혁의 주요 영역이 재협상되거나 없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은 뒤 『그런 것들은 프로그램의 지속에 본질적인 확고한 약속』이라고 밝혔다. 피셔 부총재가 밝힌 상황변화란 ▲현재 IMF가 판단한 가정이 아주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거나 ▲향후 6개월간 극단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 등을 의미한다.
IMF는 피셔 부총재의 이같은 언급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재협상논란이 계속되는 데 대해 난처해하는 눈치이다. IMF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거나 우리측에 불만을 표시한 사실은 없지만 내심 불쾌해한다는 것이 우리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2차지원분 35억8,000만달러에 대한 지급을 결의해야하는 18일 이사회를 앞두고 재협상 논란이 계속될 경우 지원일정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IMF내에서 제기되고있다.
우리측의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대선만을 의식해 본심과 다른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재협상 논란은 우리의 대외 신인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있다』면서 『대선후 당선자의 태도가 계속적인 지원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정광철 특파원>워싱턴=정광철>
◎우리정부/‘가지’엔 조정한다해도 ‘줄기’엔 손못대
재정경제원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재협상을 해야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이 가뜩이나 한국이 IMF의 지원조건을 제대로 실행할지 「의심」하고 있는 마당에 유력한 대선후보까지 재협상을 선거공약으로 제기, 한국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재경원은 IMF의 자금지원에도 불구, 한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조기안정은 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돼 공황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도 정치권의 이같은 재협상 주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재경원은 또 IMF가 내년 1월 협상단을 한국에 파견, 앞으로 한국이 자금지원 조건으로 반드시 이행해야 할 조건의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을 제시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정치권의 주장은 추가 협의에 큰 부담을 줄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재경원의 입장은 간단하다. IMF와 분기별로 함께 실시하기로 한 점검(Review) 과정을 통해 구체적 내용 등 「가지」에 대해 협의 또는 조정할 수는 있지만 자본시장 개방일정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추진일정, 기업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방안 시행일정,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방안추진일정 등 「줄기」에 대해서는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재경원의 생각은 한국정부가 IMF에 전면적인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IMF는 이를 「계약위반」으로 간주해 자금지원을 중단하고 국제금융시장도 한국시장을 완전히 배척, 한국이 파산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정부가 금융시장 마비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겨 정책실패에 대한 비난여론을 희석시키려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김경철 기자>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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