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위기는 지성몰락 탓 지역패권 이젠 청산 편견·허무의 굴레벗고 국민 합리적 선택 도와야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돈과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세력이 무소불위 보수언론의 지원을 받으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면 안되는 일이 없었다. 정책이고 공약이고 상관없고, 내란범이건 무능력자이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들만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권력창출자로서의 뿌듯한 만족감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그들은 나라의 장래와는 상관없이 철저하게 기득권을 지켜줄 후보를 자기 품 안에서 만들어내고 길들였다. 이제 많은 국민이 영남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영남후보불가론이 대세를 장악하였으나, 영남패권주의에 숨어있는 기득권세력 패권주의는 미처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번 대선에 영남출신후보는 나오지 않았으나 나라를 망쳐놓은 기득권세력은 영남표에게 또다시 권력창출의 단맛을 보라는 추파를 던지며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국정운영세력을 잘못 선택한 뼈아픈 결과를 우리는 처절하게 맞고 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건 그 대가는 국민 모두가 치르게 되어있다. 더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못사는 사람들이 더 힘들기 마련이다.
정부와 기업과 기득권세력이 만들어놓은 위기를 국민이 떠안게 되었다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위기를 극복하자면 그 국민으로부터 고통의 감내와 동참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가, 좌충우돌하다가 좌초하고 마는가의 여부도 결국 국민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는가, 그 정권이 기득권세력에게는 양보를 얻어내고 국민에게는 고통분담을 설득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이런 때일수록 국민들은 이미지나 감정이나 분위기로 투표하지 말고 이 경제사회 위기를 극복하는데 누가 더 적당한가 하는 기준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때일수록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지 않도록, 선거결과에 대해 추호의 불만이 없도록 최대한 공정한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한 지역의 표가 특정후보에게 쏠리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특정후보에게 쏠리는 방식과 이유가 문제인 것이다.
특정후보와 그 지지세력이 경제사회 위기를 극복하는데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긍정적인 이유로 그 후보를 지지한다면 적어도 국민적 합의를 깨뜨릴 염려는 없다. 다른 후보측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쪽과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유익한 방법들이 도출될 수도 있고, 치고 받고 싸우면서 정을 키워가는 형제간처럼 더 강고한 유대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거리를 조장하고, 반대세력에 대한 근거없는 흑색선전이나 지역 패권주의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암울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합심해서 애를 써도 장담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민심이 분열하면 우리는 끝장이다.
지성불모의 사회임을 실감한다. 모방송사의 유명앵커는 어느 인터뷰에서 『만약 지성이 깨어있다면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지성들은 무소불위의 언론권력이 만들어놓은 상업주의와 니힐리즘과 매카시즘 앞에서 완전무장해제를 당한 채 무력해졌다. 쉽게 희망을 포기한 식자들은 『외로움을 달랠 길 없다』는 한마디 변명만을 남긴 채 학연과 지연의 패거리 품에 안기며 타락해간다. 믿어왔던 사람들이 타락하는 것을 지켜보며 혼란에 빠진 중생들은 『이민이나 가야겠다, 망해도 싸지』하는 저주섞인 말들을 내뱉으며 허무주의의 늪으로 빠져든다. 참 큰일이다.
허무는 상대적으로 어떤 것이 더 나은지하는 판단을 포기하게 한다. 싸잡아 욕을 하고는 아예 얼굴을 돌려버리게 한다. 그 허무가 마련해준 공간에서 절대권력은 춤을 춘다.
지성인들이 편견과 오만의 굴레를 벗고, 허무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서 낙천적이고도 단호한 지성으로 감정적이고 지엽적인 논란을 제어하고, 국민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지성인들에게 부여한 역사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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