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자금지원따른 대외 피해의식보단 국제경제틀속 일원으로 성숙한 자세 필요하다요즈음 외세론이 새삼스레 많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 수혈조건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권한을 상실함은 물론 국내시장을 막강한 외국자본에 노출시키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IMF를 조정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시장 제패전략의 일환이라느니 일본이 한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 또는 독도분쟁에 있어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조장한 사태라는 등의 말들이 공공연하게 들려온다.
위기에 처하게 될 때 가장 쉽게 상황을 해석하는 방법이 책임론과 음모설이다. 모든 문제가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오판과 잘못으로 인해 빚어진 것이라고 한다든가 또는 어떤 강력한 배후세력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라고 하면 나 자신의 책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요즈음 우리가 IMF 문제를 다루는 시각도 이 양극단을 오가고 있다. 여기서 책임론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그러나 이 기회에 외세론에 대해서는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외세에 의존해온 역사다. 우리는 분명 미국이라는 「외세」에 의해서 해방을 맞았고 미국과 유엔이라는 「외세」 덕분에 한국전쟁이라는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외세」가 주도하는 세계시장에 편입함으로써 국가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외세에 종속된 것은 아니다. 자유시장경제이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경제는 오히려 대단히 폐쇄적이다. 수출을 통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적극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국산업 육성을 빌미로 국내시장은 철저하게 보호하여 왔다.
그러나 제국주의나 종속이론에 따르자면 한국은 선진자본에 종속되는 정책을 폈다. 80년대 내내 좌파이론가들은 한국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값싼 노동력이나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국경제는 시장경제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는 너무나 폐쇄적일지 몰라도 종속이론의 시각에서 볼때는 너무나 개방적이었다. 작금의 상황은 외국자본이 결국은 그 마각을 드러내면서 그 동안 키워온 한국경제를 통째로 집어삼켜 먹어버리는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요즈음 들려오는 외세론은 새로운 형태의 종속이론이나 제국주의론이다.
이러한 외세론은 한국인들의 심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조선조 500년은 결국 쇄국정책 때문에 외세에게 국권을 빼앗기면서 막을 내렸다. 북한은 「주체」라는 명분하에 지난 수십년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라는 악명을 떨쳐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서울을 보라. 외국인들이 늘 놀라워 하는 것이 인구 1,000만이 넘는 도시치고 이렇게 외제차가 드문 곳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은 문화적 다양성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대도시이다. 세계 유수의 대도시 치고 「차이나 타운」 하나 제대로 없는 도시 역시 서울 뿐이다. 그렇다고 외제물품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값비싼 화장품, 술, 가구, 보석 등 웬만한 외국 도시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곳이 서울이다.
우리는 외국의 물건들을 많은 돈을 주고 살 줄은 알아도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람들을 사귀는데는 서툴기 그지 없다. 외국 음식을 먹어본다는 것도 사실은 대단한 모험심과 열린 마음이 없이는 안된다. 외국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귄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개방을 한다면서 외제물건이나 들여와서 흥청망청 쓰는가 하면 값싼 노동력 때문에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부려먹고 착취하는데 그쳤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국제경제체제의 보다 성숙한 일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나아가는 과정이다. 선진국의 요건은 국제체제에 완전히 편입하면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국의 문화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상품들을 개발하고 그것을 전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문화와 문물,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한국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섣부르고 설익은 외세론을 경계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