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은 이 난국 돌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같은 원초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소위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대처하는 지자체들의 대응전략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난국」에 대처한다면서 반대로 난국에 편승해 긴축예산은 고사하고 오히려 팽창예산을 짜는가 하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지자체와 의회가 나눠먹기식 예산배정을 하는 등 구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지자체가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고 지방의회가 예산안을 의결할 때까지만도 IMF시대를 예견 못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중앙정부예산도 그렇지만 지자체예산에도 거품성격의 팽창예산요소가 적지않이 들어가 있었던 게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마저 예상 못했던 IMF사태는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와 기업 그리고 가계에마저 초긴축의 살림살이를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지자체가 이미 확정된 98년 예산을 초긴축예산으로 수정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전략의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지자체들이 예산재편성 또는 수정예산편성을 하면서 보인 자세는 「경제난국」을 외면하고 있다. 예산을 늘리거나 긴축의 규모를 줄이려는 데만 혈안이 된 것처럼 보여 시민들에게 실망만 안겨 주고 있다.
당초 10조1,912억원규모의 예산을 짰던 서울시는 5%인 5,095억원을 삭감하기로 수정예산편성원칙을 세웠으나 시의회의 내년 5월선거를 겨냥한 선심예산 강요로 3.8%인 3,825억원만 줄이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도 시의회 사무처 경상비는 2억8,000만원이 증액됐고 구청을 지원하는 교부금은 650억원이 새로 편성됐다. 선거를 겨냥한 선심예산과 제몫은 늘리면 늘렸지 한푼도 줄일 수 없다는 이기주의의 발동 때문인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는 도의회의 의정활동보고서 발간비용 5억1,000만원의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충북도는 아예 당초예산 9,786억원에서 114억원이 늘어난 수정예산을 마련, 긴축을 위한 게 아니라 팽창을 위한 수정예산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의 이러한 행태는 IMF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고통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나 하나쯤이야 하는 무사안일의 구태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지자체의 이러한 현실인식부재가 그것으로 끝날 수 있다면 그래도 낫겠다.
그러나 지자체의 무지에 가까운 대응전략 잘못의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경제를 잘못 관리해 나라경제를 파산나게 한 이 정부의 과오가 지자체에서 또다시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위험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자체의 잘못된 「난국의식」을 질책하면서 IMF시대의 대응전략을 초긴축예산 위주로 다시 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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