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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살,정부가 먼저 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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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살,정부가 먼저 빼야한다

입력
1997.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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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5년간 5만명이 늘어 현재 전체 공무원수 93만명/여기에 투자·출연기관 등 준공무원 합치면 무려 180만명/업무중복·예산낭비도 문제지만 제 밥그릇 챙기기 위한 각종 규제 양산이 더 큰 문제/“3분의 1정도는 줄여도 된다” 공무원들조차 인정하는데…출범초부터 「작은 정부」 「경쟁력있는 정부」를 표방하고 네차례나 정부조직을 개편했던 김영삼정부. 그러나 4년 9개월이 지난 지금 그런 구호는 빛이 바랬고 문민정부의 조직개편은 완전히 실패했다.

조직개편으로 이루겠다던 규제완화는 말에 그쳤고 인력을 줄여 스스로 감량경영의 모범을 보이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신탁통치로 우리 경제의 과제였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게 됐지만 정작 시급한 것은 정부의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총무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은 93만4,252명. 문민정부 출범 당시보다 4만8,073명이 늘어났다. 임기내에 2만명을 줄이겠다던 약속은 간 데 없고 오히려 1년에 1만명꼴로 늘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농가 인구는 85년 852만1,000명에서 95년 483만8,000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런데도 농림부와 산하단체 근무자는 되레 늘어났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 든 지방자치단체가 많은데도 지방공무원은 늘고만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상하위 자치단체간 업무가 중복되고 행정낭비도 심하다.

그래서 전경련 등 민간경제단체들은 『전체 공무원의 90%를 줄여야 한다』고 까지 주장한다. 공무원 사회에서조차 『현재의 3분의 1정도는 줄여도 된다』고 할 정도이다.

물론 총무처의 주장은 다르다. 우리나라 공무원이 선진국에 비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공무원 1인당 국민수는 48.9명으로 영국 14.2명, 미국 14.5명, 일본 30.1명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투자기관 출연기관 각종연구소 관변단체 등에 근무하는 준공무원을 합치면 그 수는 180만명선에 이른다.

불필요한 공무원이 많다 보니 예산 낭비도 많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불필요한 규제를 자꾸만 만들어 국민생활을 불편하게 한다는 점이다. 문민정부는 5,038건의 규제완화 대상을 선정, 9월까지 4,745건의 규제를 없앴다. 하지만 8월말 현재 각종 규제는 1만1,000건으로 94년 1만1,750건에서 불과 750건 밖에 줄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규제를 없애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를 그만큼 늘려온 결과다. 심한 경우 한가지 업무에 10여개 부처와 기관이 달라붙어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문제가 생기면 어느 부처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권에는 달라붙고 책임은 지지 않으니 경쟁력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

삼성경제연구원 이규황 부사장. 『차기 정부는 정부조직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산업경쟁력도 문제지만 정부부문을 줄이지 않으면 IMF가 권고한 성장률 3%선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 없다. 낮은 성장률을 지키려면 대량실업이 불가피한데 정부가 먼저 군살을 빼지 않는데 누가 정부말을 듣겠는가.』

문민정부 조직개편이 실패한 데 대해 자유기업센터 김정호 박사는 『공무원을 해고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자리가 없어지면 사람도 줄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규는 이같은 이유로 공무원을 해임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는 또 『공공분야를 정부가 독점하고 있어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공무원이 움켜쥐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주선 박사는 『일을 자꾸 만들어 내려는 공무원의 속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개선하기 보다는 규제를 만들어 자신들의 밥그릇을 튼튼히 하는데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조직개편을 공무원에게 맡긴 것은 더욱 큰 문제. 문민정부초 행정쇄신위에 참여했던 N박사. 『행쇄위 위원은 공무원들이 추천했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대하는 주장을 내놓는 위원은 곧 교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조직개편이 될 수 있었겠는가』

차기 정권의 정부조직 개편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조재우 기자>

◎조직개편의 실패작 ‘공룡’ 재경원/‘작은 정부’ 개편취지 불구 94년 재무부와 기획원이 통합/견제·균형 사라진채 독주 거듭/게다가 인력은 그대로 남아 ‘인공위성 공무원’ 양산/해체 않으면 2류국가 전락” 미 컨설팅사 한달여전 경고

정부수립후 지금까지 정부조직개편은 모두 47차례. 그중 94년 12월3일 발표된 45번째 개편의 폭이 가장 컸다. 이 개편에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 재정경제원이 출범했으며 건설부와 교통부가 건설교통부로 뭉쳐졌다. 상공자원부가 통상산업부로 이름이 바뀌고 장관 2명, 차관 3명, 차관보 4명, 국장급 23명을 포함, 모두 900여개의 자리가 없어졌다.

『작지만 효율적이고 강력한 정부를 만들고, 규제에서 서비스중심으로 기능을 전환하며, 국민복지증대와 개개인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가 정부의 조직개편 이유였다.

그러나 정부 발표 직후부터 이 개편은 국가경쟁력을 키우기는 커녕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 재경원이라는 공룡을 탄생시킨 것은 시대착오적 조치라는 지적이 늘 비판의 중심을 이루었다. 두 부처의 통합은 당시 경제관료 등 이해당사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추진한 밥그릇싸움의 다른 형태라는 뒷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국가장래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결여한 단순한 물리적 통합이라는 비난도 거셌다.

재경원에 대한 비판은 조직 비대화와 이에 따른 비효율에 집중됐다.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재경원 출범 직후부터 다른 부처에서는 「재경원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거대 부처인 재경원에 대한 견제와 균형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데 따른 것이다.

한 전직 경제관료의 회고. 『전에는 경제기획원 기획국과 재무부 이재국이 우리나라 거시경제정책과 미시경제정책을 대변하는 부서였다. 당연히 두 부서사이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논쟁에 개입한 사람들은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의 경제논리를 개발해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부처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져 어제의 최선이 오늘에는 차선으로 밀리기도 했다. 효율이 떨어지고, 부처이기주의가 앞선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치열한 토론과정에서 찾아진 견제와 균형은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재경원의 조직과 권한은 너무 커 누구도 독주를 막을 수 없게 됐다. 조직관리가 어렵게 됐고 정책입안과 수행도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앞의 전직 관료의 이어지는 회고. 『전에는 기획원과 재무부 실무자 사이에 협의가 안되면 청와대가 조정에 나섰고 또 경제장관회의에 최종 조율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경원이 권한을 독점한 이래 다른 부처에서는 장관조차도 재경원에 대한 불만을 말할 수 없었다. 재경원 1급 회의가 경제장관회의가 되어 버렸다』

또 부처 통합으로 조직만 줄어들 뿐 인력은 그대로 남아 불필요한 규제를 남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사실로 나타났다. 당시 정부조직개편으로 자리가 없어진 900명 가운데 공무원 신분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200여명은 국내외 연수를 떠났다. 예산낭비가 따른 것은 물론이다. 자리가 없어 이리저리 떠돌게 된 이들 「인공위성 공무원」들은 지금은 두 부처출신을 포함,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처를 합쳐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다.

지난 10월31일 발표된 미국의 컨설팅사인 부즈앨런 & 해밀턴사의 보고서. 재경원으로부터 용역을 받아 작성한 이 보고서는 『한국은 재경원을 해체하지 않으면 조만간 2류국가로 전락할 것』라는 경고를 담았다. 과도한 정부개입이 경제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거대부처 재경원의 해악을 응축한 이 경고는 이미 때가 늦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일부터 IMF의 경제신탁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재경원 발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45번째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된지 꼭 3년만의 일이다. 3년전의 그릇된 정부조직 개편에서 이미 현재의 불행은 싹트고 있었다.<정숭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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