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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크라시」의 가능성/정달영 심의실장(선택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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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크라시」의 가능성/정달영 심의실장(선택의 길목에서)

입력
1997.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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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날이 열흘 앞으로 다가섰다. 두번 째 대선후보초청 TV합동토론이 그나마 국민의 관심을 붙잡은 것은 이런 일정의 촉박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무슨 기대감이 있어서라고도 말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다만 기막히고 울화 치미는 가슴들을 어쩌지 못해 그냥 TV화면을 지켜보는데 그쳤을 것이다. 달리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당장 나라는 거덜나고 그 국민은 엄동설한 광야 한복판에 내몰리게 되었는데도 이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조차 국민은 알길이 없다.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더욱 없다. 공직자도, 재벌도, 정치인도 없고 최대의 책임자여야 할 대통령은 더 이상 「사죄」할 입이 없다.사실, 누군가가 책임지겠다고 나선들 그로써 막힌 기가 뚫리고 치미는 울화가 진정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앞날이다. IMF에서 꾸어준다는 그 돈이면 우리 경제가 과연 되살아난다는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은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을 물어야 「고통에 동참」하게 되는 것인지, 빚얻어 빚갚아 나라 체면 살려내는데 앞으로 몇십년이 걸릴 것인지, 대량실업으로 직장을 잃는 국민의 「대량생계」는 어떻게 보장되는 것인지, 나라 살림 파산시키는데 책임이 적지 않은 재벌들은 어쩔 것인지….

이런 이야기들이 아니면, 그 어떤 명론탁설도 감언이설도 귀에 와닿지 않는다. 두번째 TV토론의 주제가 「정치」인 점은 처음부터 이런 약점이 있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세상 돌아가는 일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토론은 몇가지 기술적인 난점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있게 전개되었다. 기술적인 난점은 답변시간의 제한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심도있는 토론을 불가능하게 해서 자칫 재치문답 식의 임기응변만을 요구하는 결과가 된다. 머리의 회전속도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이 점은 두고두고 보완해야 할 숙제로 남는다. 단문단답형의 토론을 통해서는 후보의 인간적인 성실성, 대응능력의 폭과 심도 등을 헤아리는데 한계가 있다.

이날 토론에서는 경제위기와 관련한 책임론, 내각제 공방, 흡수통일 논쟁, IMF 재협상론, 군축논쟁 등 주목할 만한 쟁점들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무익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병역 시비같은 문제들의 재공방에서 오늘의 시대적 위기를 보는 역사적 안목이나 21세기 국가관리에 관한 거시적 비전의 결핍을 느껴야하는 국민 또한 많았음을 숨길 수 없다.

한가지, 국가적으로 민감한 현안이라고 할 외교―안보―통일에 관한 몇가지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흡수통일 논쟁이나 군비축소 논쟁 등이 그같은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날 격론을 벌인 IMF 「재협상」을 둘러싼 후보들의 공개적인 의사표명도 바람직한 일인지, 심각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국가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의 의식과 분노는 매우 심각하다. 어디에 호소할 곳도 기댈 곳도 없이 다만 허망한 「공황」일 뿐이다. 후보들이 토론에서 토로하는 논리나 호언장담은 국민의 위기의식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안일하고 겉돈다는 느낌을 떨어버릴 수 없다. 국민이 감당해야 할 무한대의 희생의 몫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벌어지는 정치 담론은 국민적 실망감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부정적인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15대 대선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TV토론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첫번 째보다는 두번 째가 낫고, 다음 세번 째는 좀더 나아질 것이다.

미디어를 이용한 선거, 이른바 「미디어 크라시」는 우리나라 정치사의 획기적인 진일보를 뜻한다. 당내 경선 때부터 시작된 미디어 토론이 우리 후보들을 얼마나 「교육」시켰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검증」되고 있음이 틀림 없다. 또 선거자금은 지금 얼마나 절약되는 중인가. 죽은 아기 나이 세기와 같지만, 생각할수록 아쉬운 일은 지나간 14대 대선 때에 TV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다. 그 때에 만약 이번 만큼의 TV토론이 있었다면, 그래서 후보들의 「밑바닥」을 두루 들춰보았더라면 「김영삼 대통령」이 탄생했을 것인가?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아야 하는 이유를 우리 국민은 지금 절절이 느끼고 목격하고 깨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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