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나 총리들 중에는 특별히 친한 사이로 소문난 사람들이 있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콜 독일총리, 클린턴 미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총리가 그런 사이다. 국가정상 간의 친분은 나라가 어려울 때 뜻밖에 힘이 되는 수가 있지만,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클린턴과 블레어는 옥스퍼드 동문이라는 것 말고도 닮은 데가 많다. 두 사람 다 진보정당 출신이면서 중도주의로 선거에 이겼고, 선거후 정치헌금 스캔들에 말려 고생하고 있는 처지도 같다. 블레어의 승리에는 사실 클린턴의 도움이 컸다. 선거참모까지 보내 전략과 기법을 전수했다. ◆그 두 사람이 요즘 더 가까워졌다. 이라크사태 때문이다. 91년 걸프전 때와 달리 유럽의 지지를 얻지 못해 미국이 고립되자, 블레어는 항모 인빈서블호를 즉각 파견해 생사를 같이 할 맹방임을 과시했다. 유엔안보리에서도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 맞서 미국 편이 돼 줬다. 선거때의 빚을 갚은 셈이다. ◆처칠과 루스벨트 때 절정이었던 영미 사이는 수에즈전쟁 당시 이집트 프랑스 이스라엘 연합군과 싸우는 영국을 아이젠하워가 모른 체한 탓에 한때 서먹해졌다. 그러나 케네디와 맥밀런이 집권하면서 곧 회복됐고, 레이건과 대처를 거쳐 지금 양국관계는 새로운 밀월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오늘의 영미관계는 물론 문화적 인종적 친밀성에 뿌리가 있지만, 그 배경에는 두 나라 정상들이 쌓아 올린 신뢰의 공적이 있다. 「대통령 광내기」외교로 일관하면서 어려울 때는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