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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러시아’ 걱정/이진희(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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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러시아’ 걱정/이진희(특파원 리포트)

입력
1997.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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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간밤에 내린 눈이 주요 간선도로에 그냥 남아 있다. 50여분 거리의 아침 출근길이 2시간 가량 걸렸다. 거의 매일 밤 눈이 내리는 모스크바에서 도로의 제설작업은 겨울철 시정의 기본인데 요즘은 예전같지 않아 시민들이 불만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출근길에 스네그우보르쉬(제설차량)의 작업을 드문드문 볼 수 있었을 뿐 주요 간선도로엔 이미 눈이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으나 올 겨울에는 기대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그 이유는 여러가지다. 몇달째 임금이 밀려 있는 청소원들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 국가의 핏줄과 같은 도로 정리를 위해 정치 경제적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운 겨울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던 평범한 청소원들의 실종은 암담한 러시아의 앞날을 보여주는 것같아 안쓰럽다.

무엇보다 러시아를 위협하는 것은 역시 임금체불이다. 보리스 옐친 행정부는 올 연말까지 각 분야의 체불임금을 해소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십조 루블로 추정되는 체불임금은 좀체 줄어들지 않고 옆방의 러시아인 기자는 올 겨울나기가 그 어느때보다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 친구가 언제부턴가 체류한국인의 직장과 월급을 걱정해주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한 뒤다. 그는 IMF 대책에 관한 한 「러시아가 한국보다 한수 위」라며 『한국도 러시아의 실업 및 임금체불 현상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IMF의 요구를 지키다 보면 도산은 물론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기업들이 나올 것이다. 「제2의 러시아」가 되지말라는 법도 없다.

그럼에도 모스크바 교민사회에는 국가적 위기를 아예 무시하는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아직 남아 있다. 러시아에서 에너지 개발을 담당하는 한 국영기업체 소장은 「국가파산」 위기소식을 접한 뒤 『이럴 때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던져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또 기업의 도산과 대량해고로 나타날 현 위기를 국영기업체 직원의 앞날과는 무관한 「남의 일」이라는 태도를 취해 주변을 격분시켰다고 한다.

오늘날의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대통령도 경제관료도 기업인도 월급장이도 모두 책임을 느껴야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책임과 노력을 모두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 국내엔 더 이상 없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인사들이 많을수록 국난극복은 더 힘들고 더뎌지기 때문이다.<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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