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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큰 도둑인가/이진동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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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큰 도둑인가/이진동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7.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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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경제신탁통치의 직접 원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외화가 바닥나 외국의 빚을 갚을 수 없는 국가부도 때문이었다. IMF에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한 뒤 시민단체들과 각 학교에서 달러모으기에 나섰던 것도 부족한 외화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부자나라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던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6일 부유층 집만을 골라 털다 경찰에 붙잡힌 절도범은 이러한 의문에 적확한 대답 하나를 제시했다. 18가구를 턴 이 절도범은 9가구(경찰에 알려진 것만)에서 6만여달러와 300만엔 등 무려 1억원 가까이를 훔쳤다. 한 곳에서 평균 6,000달러 이상을 갖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달러부족으로 외환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던 11월초에도 이 절도범은 강남의 한 부잣집 서랍 속에 들어있던 1만5,000달러를 털어 나왔다.

IMF가 「점령군」처럼 휘젓고 나간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달러모으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몇천달러를 내놓았다는 소리는 없었다. 서민들만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온 뒤 남았던 자투리 경비를 내놓았다. 달러가 없어 나라가 IMF에 치욕을 당할 때도, 같은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설 때도 그들은 달러를 장롱 속, 혹은 서랍 밑에 감춰두었다.

1달러짜리 지폐나 동전을 「나라살리기 함」에 넣는 초등학교 아이의 고사리 손을 보면서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의 욕심이 커질수록 그만큼 많은 서민들이 허리를 졸라매고,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동전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그들의 장롱 속에서 달러를 꺼내온 절도범에 동정을 느낄 정도입니다』라는 수사관의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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