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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락지 내놓는 심정/이준희 사회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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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락지 내놓는 심정/이준희 사회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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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락지」란 단어에서는 웬지 애잔한 슬픔이 느껴진다.우리 정서속에서 금가락지는 단순한 여인의 장신구나 금붙이가 아니다. 이 귀금속의 의미는 다이아몬드나 루비, 진주 따위가 상징하는 부와 풍요로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금가락지는 도리어 가난하고 고단했던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삶을 연상시킨다. 대개 시집올 때 어렵게 장만했거나 또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을 금가락지는 좀처럼 그 원래의 기능대로 쓰이지 못한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가느라 물기 마를새 없는 손에 가락지를 끼어 볼 경황이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제 나이가 들어 한숨이나마 돌릴 때 쯤이면 이미 온갖 험한 일로 마디 굵어진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금가락지는 끼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만지고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울리는 자리도 고운 손가락이 아니라 안방 장롱의 깊은 속이다. 그것도 손수건 등의 속에 겹겹이 싸여진 채로. 빛깔조차 온갖 사연과 시름이 세월과 함께 켜로 앉은 누런색이다.

말하자면 금가락지는 궁벽한 시절 우리들 삶의 위안이자 희망의 한 상징이었던 것이다. 주름이 깊게 파인 아내나 노모가 실의에 빠진 남편이나 자식에게 남몰래 쥐어주는 금가락지는 금 몇돈쭝에 해당하는 돈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다. 간절한 사랑과 희망을 담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살림살이가 훨씬 나아져 이제 금 몇돈쯤은 어느 집에서나 큰 돈으로 여기지 않게 된 요새도 많은 집에서 자식의 백일반지나 돌반지 등을 쉽게 「처분」하지 않고 보관해두는 것도 아마 이런 정서의 흔적일 것이다.

그 금가락지들이 요즘 장롱속에서 나오고 있다. 나라형편이 워낙 어렵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수집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한말 일본에 진 빚을 갚기위해 부녀자들이 앞장서 나섰던 국채보상운동의 정확한 재현이다. 때론 조급하고 분수를 잊기 일쑤이며 저만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럴때 보면 도대체 이렇게 선량하고 어진 백성들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이런 국민들 앞에서 관료들이나 정치인 등 나라를 이 꼴로 만든 당사자들은 여전히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경제실상을 호도해왔듯 IMF합의내용까지도 속이고,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는 말같지 않은 논리로 책임을 비껴가려 든다. 입만 열면 『고통분담』을 외치지만 이런 그들이 정말로 제 밥을 덜어내는 고통을 감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제발 이제라도 금가락지에 담긴 그 절절한 마음들을 한번 새겨보라. 대부분 그런 어머니밑에서 자란 자식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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