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겐 치열한 국민적 자부심이 큰 자산이다. 그들은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데 선수들이다」 최근 영국신문 더 타임스에 실린 구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통제가 시작된 이후 한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살리기 운동이 서구인들에겐 경이롭게 투영되는 것 같다. 그들은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대규모 예금인출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94년 멕시코 금융위기때 그들이 목도했던 난장판식 환전사태나 외화도피행각은커녕 장바구니 주부들까지 달러를 들고 은행에 맡기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 경제가 공황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같은 국민정신이다.이른바 IMF위기가 시작된 이후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들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에서부터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경제살리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만시지탄의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는 외국인들의 비아냥을 들은 게 한두번이었던가. 그중에서도 우리들의 외제병은 대표적인 거품이고 허세였다.
위스키를 연 3억달러어치나 수입해 한국이 세계 위스키시장의 최대고객이 된지 오래다. 요즘에는 한국이 세계 포도주업체의 각축장으로 변할 만큼 포도주 수입이 폭증하고 있다. 골프채 모피의류 등도 마찬가지이다. 외제병은 단지 외제상품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분수를 모르는 해외여행과 해외유학병은 물론 웬만한 수술도 외국병원을 찾는 의식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히 초등학교에까지 번진 해외유학병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학생의 경우 1년정도는 해외연수가 필수코스가 된 바람에 정규대학은 아예 5년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올들어 무역적자(1∼10월)는 60억달러 수준이나 해외여행이나 유학경비, 외제상표에 대한 로열티지급 등 무역외적자는 65억달러다. 11월 들어 무역수지는 2억1,000만달러의 흑자로 돌아섰다. 이젠 무역외적자를 줄이는 것이 외국빚을 줄이는 첩경이다. 소비생활의 건전화도 뒤따라야 한다.
지금 서민들에게 허리띠를 더 졸라매자고 하면 웃기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물가고와 실업사태로 생존에 급급한 서민들에게 고통분담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런 말일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계층간 괴리와 위화감의 불안요인이 심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적 단합을 위해선 무엇보다 가진자들의 자기절제가 요구된다.
당연히 소비자 개개인의 몫도 있다. 어깨띠나 두르고 구호나 외치는 식의 애국심만으론 글로벌시대에 맞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허세와 거품을 없애는 의식의 변화가 중요하다. 각자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알게 모르게 체질화한 외제병을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국가적 「적자줄이기」에는 이런 총동원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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