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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늘고 가정까지 ‘구조조정’/고실업시대의 사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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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늘고 가정까지 ‘구조조정’/고실업시대의 사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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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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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은 단순한 경제현상이 아니다. 개인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가정은 존립위기에 서게 되며 사회적으로 불안심리가 확산된다. 실업은 나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심각한 사회현상이다.미국 프랑스 독일 등 일찌감치 경기 침체를 겪어온 선진국에서는 실업은 가장 큰 사회문제로 다뤄진다. 실업 대책은 선거 때마다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실직자나 미취업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경우도 빈번하다.

우리가 일찌기 겪어본 적 없는 고실업시대의 사회상은 어떤 것일까.

○알코올·약물중독자 등 급증

▷사회생활◁

실업률 상승은 범죄 증가로 이어진다. 우선 실직자가 많아지면 개인과 가정에 대한 경제적인 압박이 커지기 때문에 절도 사기 등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또 좌절 심리가 확산돼 일탈 가능성이 커진다. 범죄학자들은 『직장이나 조직에 속해있지 않은 실직자들은 사회나 규범의 통제를 받는다는 의식도 희박해지기 때문에 생활에서 절제를 잃기 쉽고 범죄를 일으킬 확률도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독일 일본의 경우 실업이 늘면서 절·강도가 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 프랑스의 경우 실업자 수와 살인율·강간율, 독일의 경우 실업률과 살인율이 함께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범죄 증가와 함께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좌절감과 상실감을 병적인 방법으로 해소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체되고 민심도 흉흉해질 것은 자명하다.

○이혼 증가하고 맞벌이 많아져

▷가정생활◁

기업의 구조조정이 곧 「가족 구조조정」이라는 말도 있다. 실업 문제는 바로 가정 불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100만명의 실업자가 생기면 4인 가족 기준으로 400만명이 고통을 받게 된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에는 가정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이혼율도 상승한다.

임시직이나 시간직 등으로 맞벌이에 나서는 주부가 많아진다. 가구 수입이 가장 1명에게 집중되던 가족 구도도 「권력분산형」으로 바뀐다. 전체적으로는 가족 구성원의 파편화가 가속화하고, 결속력은 떨어진다.

가구당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외식이나 나들이도 줄어든다. 당장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에도 문화 생활은 일단 접어둘 수 밖에 없다. 주부들 사이에는 경제적으로 가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위기감이 확산된다. 실직자 증가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분위기 경직,모범직장인 늘어

▷직장생활◁

직장 분위기는 매우 경직될 것이다. 누구라도 언제 실직할 지 모른다는 공포,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 의식 때문에 위계 질서가 더 뚜렷해진다. 「일찍 출근, 늦게 퇴근」하는 우등생 직장인이 많아진다. 해고대상자 선정기준이 되는 인사고과에 불량학점을 받았다가는 당장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노동자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90년대초 불황기 대량감원을 실시한 미국의 1,0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력 감축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보고한 회사는 30% 미만이었다. 해고 잔류자의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의 인력 부문에서 생산성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김경화 기자>

◎고용시장 대변화/비정규고용 는다/파견근무·일용·계약직… 임금 낮고 복지혜택 없어/신분불안 해소대책 시급

IMF시대 노동자들은 열악한 임금과 「언제 잘릴 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산업전반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파견근무와 파트타임, 계약직,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고용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97년 5인이상 사업체 근로자중 비정규근로자 비중은 10.3%. 인원수로는 61만명에 달한다. 이는 92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중 파견근로가 3.75%(22만5,000명)로 가장 많고 임시일용직 2.16%(13만명), 계약직 1.59%(10만명), 파트타임 0.80%(5만명) 순이다.

IMF체제하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 확대가 불가피해 비정규근로자 비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비정규근로는 실업을 감소시키고 기업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제고해 주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 실제 파견근무자의 55%가 이전에 실업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근로의 확대는 노동자에게는 고용보장도 없고 임금과 근로조건도 열악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시간외수당과 상여금까지 합친 월평균급여가 정규직은 97년 152만원인데 비해 파견근로는 111만원, 파트타임은 100만원, 임시일용직은 127만원, 계약직은 124만원이었다. 이는 정규직의 66∼83%에 불과한 수준이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건강진단 등 복리후생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해 후생수준치(0.77)가 정규직(1.9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낮은 임금수준에 비해 근로시간은 정규직과 다를 바가 없다. 파견근무자는 정규직보다 오히려 3시간 많은 주 50시간을 일했고 파트타임 근무자의 근무시간도 43시간에 달했다. 고용보장도 받지 못해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처지인 데다 정규직으로 채용될 가능성은 파견근로자의 경우 4%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확대가 노동자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비정규근로의 또다른 문제점은 기업내 인적자원의 고갈. 기술인력의 유출과 자질 저하, 장기적인 인력양성 저해로 인해 기업의 생산성과 기술력이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파견근로제 도입시 생산직을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6개월로 파견기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비정규직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노동자들의 반발과 희생을 줄여야만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인구 연구위원은 『비정규근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고용조건을 다양화하고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상에 임금, 근로시간, 복지 혜택, 고용의 중도해지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여 근로자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배성규 기자>

◎해고만이 능사인가?/종업원 사기 떨어져 생산성 향상 별 도움안돼/재배치·근무시간 단축 등 온건 인력조정책 바람직

『해고밖에 길이 없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들어선 우리나라 기업들. 어떤 방식으로든 인력조정이 불가피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인력의 거품을 빼기 위해 감원을 예고하고 있다. 과연 해고만이 합리적인 인력조정책인가.

「해고가 고용을 창출한다」는 역설을 실천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대량해고의 실효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80년대부터 대규모 감원으로 대표되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도입해온 미국 기업에 대한 91년의 한 연구보고서는 인력감축정책이 종업원 사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쳐 생산성 향상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94년 미국경영자협회(AMA) 조사에서도 인력감축으로 경영지표가 개선된 기업은 32%에 불과했다. 정리해고제가 당장 인건비 부담을 더는 데는 도움이 돼도 장기적으로 조직내에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른 인력고용책에 비해 정리해고제를 너무 쉽게 도입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인수박사가 최근 고용조정을 실시한 적이 있는 우리나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이 ▲신규채용 축소 ▲임시직 확대 ▲정리해고 또는 희망퇴직제 ▲인력재배치 ▲연장근무 규제 등 순으로 인력조정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박사는 『이는 다른 인력조정의 방법을 모두 취한 뒤에 마지막으로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는 일본이나 유럽의 기업들과는 다른 현상』이라며 『최근 우리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 바람은 합리적인 경영 개선노력이라기보다는 노조에 대한 반감과 보복 심리에 따른 것같다』고 분석했다.

정리해고 대신 「일 나누기(Job Sharing)」로 돌파구를 찾은 독일 폴크스바겐사의 예. 93년 회사가 경영 악화로 노동자 10만명 중 3만명을 감원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노조는 노동시간을 주당 35시간에서 28.7시간으로 단축하고, 20%의 임금삭감효과를 감수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개인의 수입이 줄더라도 해고당하는 사람을 막아보자는 취지. 회사도 노조의 뜻을 받아들여 인력 재배치와 재교육으로 최대한 노동자의 갱생을 도왔다. 노사 협조와 고통 분담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긴 것이다.

사실상 금융 등 당장 대수술하지 않으면 붕괴할 위기에 처한 부문에서는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그러나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은 정리해고 대신 인력재배치, 신규채용 축소, 연장근무 규제 등 보다 온건한 인력조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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