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황이 시작됐다. 예금자들이 부실로 알려진 금융기관의 예금을 인출하거나 다른 건실한 금융기관으로 예금계좌를 옮겨가고 있다. 지금 예금자들은 금융기관까지 포함해서 재벌그룹들의 도산이 속출하고 있는데 대해 극도로 불안해 하고 있다. 금융기관뿐 아니라 정부까지 불신하는 상황에 왔다.뿐만이 아니다. 금융시스템 자체가 작동을 중단했다. 은행들이 종합금융사에 대해 콜자금(1일용단기자금)의 제공을 중단했고 증권회사에 대해서도 자금제공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금융기관 사이의 자금흐름이 끊겼다. 은행이 종금사의 지불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에 은행권 못지않은 자금을 제공해 온 종금사들은 기업어음을 교환에 돌려 기업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은행도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하는 은행경영개선기준에 맞추기 위해 기업은 물론 가계에 대해서까지 신규대출중지, 기대출금의 상환연장거부 등 대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여기에 증시까지 직접금융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IMF협정 이후 주가가 빠르게 회복중이나 아직까지는 증자, 회사채발행 등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로서는 1, 2금융권 등 자본시장이 완전히 막혀 버린 것이다.
금융, 자본시장의 극단한 자금경색은 실물경제의 숨통을 죽인다. 과도한 타인자본, 무리한 사업확장 등 부실요인을 배태하고 있는 기업은 물론 경쟁력 있는 기업까지 무더기 도산될 위험이 있다. 5일 증권업계(34개사) 제8위의 고려증권이 부도를 낸데 이어 6일에는 재계 12위의 한라그룹이 부도를 냈다.
증권사가 부도를 낸 것은 63년 증권파동이후 처음이다. 증권가에서는 고려증권의 뒤를 따를 증권사가 3, 4개사가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한라그룹은 금융권여신이 은행권 3조364억원, 비은행권 3조4,400억원 등 총 6조4,700억원에 이른다. 재무구조는 총자산 6조6,500억여원에 총차입금 4조2,900억원, 자기자본 3,190억원으로 부채비율은 2,067%나 됐다. 기아처럼 과도한 빚, 과잉투자, 과당경쟁 등이 결국 경영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지금 재벌그룹의 부도는 한라그룹으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는 4, 5개의 재벌그룹들의 부도설이 강하게 나돌고 있다. 이미 금융기관들이 거래기피 내지 중단하고 있어 부도는 시간문제인 그룹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5대 재벌그룹들도 자금에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벌그룹들이 한치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중소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과거 어느때도 보지 못했던 금융과 신용의 위기다.
뭣보다 두려운 것은 정부가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금융공황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부실이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진 두 은행이 2개월이내에 신뢰할 만한 자구책을 세우지 않으면 폐쇄할 수 있다는 IMF협정사항이 금융공황본격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특별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같다.
정부가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재정, 금융, 기업경영구조 등 주요 경제정책수단이 모두 IMF규정에 의해 묶여 있어 정부의 재량이 극도로 제한돼 있다. 한은특융은 제동이 걸렸다. 재정을 사용토록하고 있으나 결코 용이치않다.정부는 IMF범위내에서도 최선을 다해야한다. 의지가 있으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일 급한 것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예금인출이 전금융기관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정부는 예금에 대한 원리금보장을 강력하게 재천명해야 한다. 경제부총리의 발표만으로는 부족할 수가 있으므로 대통령이 다시 보장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고장난 금융시스템을 서둘러 정상화시켜야 한다. 문제는 종금사다. 종금사의 거래어음은 총 80여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종금사가 현재 결제를 하지 못하고 있는 2조여원에 대해서는 IMF가 허용하고 있는 재정에서 융통해서라도 해결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금융기관 재편성(빅뱅)은 속전속결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실채권매입기금조성, 예금보험기금확대 등 이미 마련된 금융위기대책을 조속히 실천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책만 무성했지 가시화한 것은 별로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효있는 대책의 실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금융정상화에 필요한 재정자금을 우선적으로 조성, 서둘러 금융대란을 공략해야 한다. 비상책을 가동시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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