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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실직공포 확산/고실업시대 직장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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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실직공포 확산/고실업시대 직장풍속도

입력
1997.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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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늘은 임원실에서 나를 부르지 않을까” 불안감으로 썰렁한 사무실/저마다 퇴직금 계산도 해보고 면허취득도 생각하지만 “왜 우리만 희생양 돼야하나” 탄식은 어느덧 울분으로…중견 건설회사의 과장 2년차인 K씨(35). 그의 주변을 통해 사회전반에 불어닥치고 있는 실직공포의 풍속도를 들여다보자.

K씨는 요즘 시골에 살고 있는 부모로부터 이틀이 멀다하고 전화를 받는다. 『별 일 없니?』라며 말을 빙빙 돌리는 부모의 안부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아채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괜찮아요』라고 안심시키지만 실은 무척 불안하다. 회사의 군살빼기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고 임원급의 감원이 이뤄지면 다음은 중간간부 차례라는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매사에 의욕과 자신이 없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다. 임원실에서 호출이 오면 갑자기 다리가 굳어진다. 술을 마시는 횟수가 많아지고 신경질도 늘었다. 부부관계에도 흥미가 없어졌다. 아내가 출근길을 도와주며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슬슬 눈치를 살피는 것도 보기 싫다. 갑자기 월급이 줄어든 것도 아니지만 절약을 해야할 것 같아 승용차도 세워두고 외식도 삼가고 있다. 책상에 앉아 남몰래 퇴직금을 계산해 보는 버릇도 생겼다. 무언가 확실한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강박감이 엄습한다. 그렇지만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력감만 커진다.

예년같으면 망년회 일정 짜기가 바쁜 때지만 약속이나 한듯 친구들의 전화도 없다. 가끔 걸려오는 전화 내용은 뻔하다. 『누구누구는 잘렸고, 누구는 일찌감치 알아서 그만두었고, 누구는 부인이 음식점을 차렸는데 밥먹으러 오라더라…』 등등.

회사내 분위기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건설사의 생리상 협동과 팀워크를 중시하던 분위기는 퇴색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경쟁자라는 인식이 동료뿐만이 아니라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도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상사는 방패, 부하는 발판」이라는 자조섞인 말도 들린다. 사내 화장실에 「연말을 무사히」라는 낙서가 등장하더니 누군가 「굳세게 뭉칩시다」라고 옆에 화답해 놓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살생부」라는 것이 구전으로 나돌아 뒤숭숭하다. 입사동기인 옆부서 과장은 남몰래 공인중개사나 감정평가사 같은 면허를 따놓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눈치다.

K씨는 기업문화가 이렇게 살벌해야 되겠는가라는 한탄이 들어 오랜만에 중간간부로서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앉자마자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욕설이 이어지더니 『왜 우리가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는 울분으로 바뀌어 부서의 사기만 떨어지고 기분도 더 상하고 말았다.

K씨는 부서 운영비가 줄어든 생각에 2차를 가자는 부하직원들을 만류하고 혼자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는 그만그만한 모습의 술취한 샐러리맨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집앞 골목에서 한 잔 생각이 더 나 포장마차에 들렀다. 평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따라 사람이 많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자신감을 되찾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배짱이 생겼다. 「자르려면 자르라지 뭐, 대학까지 나왔는데 밥이야 굶겠나」 K씨는 붕어빵 한 봉지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힘차게 초인종을 눌렀다.<한기봉 기자>

◎감원 찬바람 얼마만큼 불까/정리해고 유예도 판례에 의해 유명무실/금융부문 최소 10만명 기업 10만∼30만명 ‘실직’

대량감원 한파속에 직장인들은 목이 열개라도 살아남기 힘든 딱한 처지가 됐다. 산업구조조정 바람을 타고 대기업들이 무차별적인 감원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데다 금융기관 통폐합으로 인한 대량실직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량감원에 앞장 선 것은 한라그룹과 삼성그룹. 지난달 25일 한라중공업은 위기타개책으로 임직원 50%(3,000명) 감축계획을 발표, 충격파를 던졌고 곧이어 삼성그룹도 조직 30% 감축을 선언했다. 한화와 아남, 성원, 쌍용, 코오롱, 동아, 미도파, 뉴코아 그룹도 감원계획을 내놓았다. 대우와 벽산, 대상 그룹은 임금삭감이나 동결을 결정했다. 은행권에서는 제일은행과 서울, 강원은행이 감원을 진행중이다.

IMF체제 시작과 함께 도미노식 감원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감원의 최대의 걸림돌이던 정리해고제 유예조항도 문제가 안 될 전망이다. 노동부가 『판례에 의해서도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 데다 IMF가 노동시장 유연성을 수차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본격적인 조직감량에 나설 것으로 전망돼 감원규모는 예상조차 힘든 상황이다. 경제연구소들이 예상하는 기업 구조조정과 부도로 인한 감원 및 실직규모는 금융부문을 제외하고 대략 10만∼20만명. 그러나 금융비용 급증으로 인해 경영압박이 심해지고 연쇄부도가 증가할 경우 최대 30만명까지도 예상하고 있다.

감원은 인력 재배치를 통해 퇴직압력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성원그룹과 같이 사무관리직을 우선 감원하는 중간방식과 한라그룹처럼 전직원에 대한 무차별적 대량감원을 추진하는 극단적인 방식도 있다. 불법해고 시비를 없애기 위해 일괄사표 후 감원하는 변칙방식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I그룹은 사무관리직원 전원에게 사표를 제출케 한 후 75%만 사표를 반려할 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

종금사와 은행 등 금융기관 직원들은 매일 아침 회사와 자신의 안위를 챙겨야 할 정도. 금융기관간 인수·합병(M&A) 및 부실기관 정리로 인해 최소 10만명은 자리를 잃을 전망이다. 구조조정 바람이 은행권까지 대대적으로 파급될 경우 전체 78만명 중 30%가 실직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종금사 직원들은 『종금사 정리 과정에서 도대체 몇명이나 살아 남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1차적인 감원대상은 임원과 사무관리직. 회사마다 예외없이 10∼50%의 임원이 사라지고 과장급 이상도 상당수가 해고될 전망이다.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생산직도 감원의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감원은 결국 임원부터 기능공까지 무차별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유통과 가전, 섬유 등 내수산업은 대량감원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 등 대표적인 과잉중복투자 업종도 상당한 인력조정이 예상된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민주홍 연구위원은 『종금사의 대량폐업과 급격한 산업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 실업자는 예상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면서 『실직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사·정 협력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배성규 기자>

◎실업률 계산법 ‘눈가리고 아웅’/주 1시간 근무도 취업 계산/올 3분기 2.2% 불구 ‘실망실업자’ 포함 수치는 0.7% 달해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의 올해 3·4분기 실업률은 2.2%.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 비율이 2.2%라는 뜻이다. 1·4분기(3.1%)보다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그런데 일반인이 느끼는 체감 실업지수는 이보다 훨씬 크다. 주변만 둘러봐도 「잘린」 사람이 수두룩하고, 취직을 못해 도서관에서 전전긍긍하며 구인잡지를 뒤지는 20대도 흔하다. 그런데도 실업률이 2%대밖에 안 된다니….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전국 3만4,000표본 가구에 대한 가계조사를 통해 산출된다. 우리나라는 「최근 1주동안 구직활동을 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을 실업자로 규정한다. 이에따라 1주일동안 1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일주일에 2시간 아르바이트를 한 사람이나, 실직한 뒤 「머리를 식히기 위해」 구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직장인은 실업자로 포함되지 않는다.

이때문에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취업의사를 가졌으나 비경제활동인구로 규정된 15.7%(92년 통계청 자료)가량을 실업자에 포함시켜야 현실적인 실업률 산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취업의사는 있으나 구직을 단념한 실망실업자도 실업자로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실업률을 계산할 때 97년 2·4분기 실업률은 10.7%(통계청 자료는 2.5%)에 달한다.

통계청은 또 『한창 열심히 일할 나이의 고학력 인력의 실업 때문에 체감지수가 높아지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체감실업이 늘어난 올해 3·4분기 25∼29세 대졸 남성의 실업률은 5.2%, 20∼24세 대졸 여성 실업률은 6.8%에 달하고 있다. 전년도에 비해 2∼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전후 최대의 실업 위기를 맞았다는 독일의 상반기 실업률은 11.0%, 프랑스는 12.8%. 수치상으로는 우리나라의 5∼6배에 달한다. 노동부 고용정책과 관계자는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은 실업수당 신청자나 직업소개소 등록자를 바로 실업자로 추산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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