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시정의 원류를 찾아서『어디서 왔는지(내종하처래)/어디로 가는지(거향하처거)/온 곳도 알 길 없고 갈 곳도 모르니(거래무정종)/한 세상 산다는 것이 아득키만 하여라(유유백년계)』 조선 중종때 문신 김인후(1510∼1560)가 한 친구의 시집에 서문 대신 쓴 시다. 엉뚱하게 비유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신탁통치」에 나선 요즘 우리들의 심경같기만 하다.
한국체대 정진권 교수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조까지 한시 250편을 골라 쉬운 현대어 번역으로 엮은 「한시를 읽는 즐거움」은 이 어려운 시절에 즐거움보다 위로를 준다.
시마다 붙인 평설이 특히 그렇다. 김인후의 시에 대한 평설. 『이런 시는 늙어서나 읽자. 싱싱한 젊은 나이에 온 곳은 따져 무얼 하며 할 일이 질펀한데 왜 갈 곳을 생각해야 하겠는가? 물론 그런 따짐, 그런 생각이 젊음을 보다 성숙하게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데에 너무 정신을 잃어 삶의 쟁기를 놓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고 가는 곳을 몰라도 한 번밖에 없는 삶은 중요한 것이다』
정 교수는 마지막 4부에 여성시인의 작품을 따로 모았다. 한시문학에서 여성의 위상을 고려한 것이다. 조선 선조 때 이옥봉의 「자술」을 보자. 『비인 방 외로운 창에 달빛 비치면/그리움은 가슴 속에 한으로 맺힙니다/꿈길에도 발자취가 생길 양이면/님의 문전 돌길도 이미 다 닳았겠지요』 필자는 이를 두고 『정말 사랑이 무언지 모르는 여인들, 세상을 그저 편하게 살려는 여인들, 그들은 님의 문전에 돌길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어디 여인들만 그러하겠는가? 학지사 발행, 1만2,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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