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편을 남기기위해 평생 영화를 만든다/철저한 비타협·완벽함이 일궈낸 절대적 창작의 자유/‘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후 두번째 작품인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이 6일 관객을 찾아간다『인적이 끊어진 산업단지, 유령의 도시같은 공장지대에서 냉혹한 겨울 밤바람에 얼어붙으며 오랜 기간을 밤을 새며 작업했다. 머리를 온통 뒤흔드는 굉음과 눈뜨기 힘들 정도로 떠다니는 분진…막장의 광부같은 몰골이 되어 정신이 흐려지면, 나는 지금 죽어 있나 살아 있나 스스로 묻곤 했다』
배용균(46) 감독의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6일 동숭시네카텍). 경이로운 데뷔작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영화제 그랑프리라는 쾌거를 안았던 그의 두번째 영화.
95년 완성됐던 이 영화가 뒤늦게 극장에 걸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8주 상영을 요구했던 감독의 의지와, 흥행성이 없는 영화의 장기상영을 꺼린 상업적 배급망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배 감독은 그러나 의연하게 2년이나 버텼다.
『내 작품이 무가치한 것이라면 쓰레기가 돼 나갈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나보다는 더 오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잔뜩 여유를 부릴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믿는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죽을 힘을 다해 불어넣었던 나의 혼은 어쩐지 쉽게 죽을 것 같지가 않다』
절대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 고통을 기꺼이 감내했던 투철한 예술가의 자그마한 자족이다. 그의 자족이 작다는 것은 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쏟아 부었던 피와 땀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한 완벽주의자다. 영화가 집단창작의 산물이라는 명제는 그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수십명의 스태프가 달려들어야 하는 영화를 그는 혼자의 힘으로 다 해낸다. 각본 연출 촬영 조명 녹음, 심지어 배우의 분장과 세트까지.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감독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상업영화계와는 일절 교류가 없다. 말 그대로의 독립영화지만 그는 한국 독립영화의 대표자로서의 자각이나 사명감을 앞세우지 않는다. 이런 구속에서도 자유롭고 싶어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완벽을 향한 그의 고집은 걸맞는 일화를 남겼다. 모두 밤장면으로 이뤄진 작품은 어느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깊은 색감과, 가슴에 와닿는 명징한 소리가 우선 느껴진다.
「달마가 동쪽으로…」에서 불교의 선적 세계를 침묵의 언어로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시적인 대사를 통해 기억 속의 역사를 찾아간다. 여전히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란 만만치 않다. 이번에는 많아진 대사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의 설명이 도움이 될까?
『나의 영화에서 대사는 단순히 의사와 의미전달의 수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음악성과 회화성을 지닌다.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 음유시인의 시낭송에 매혹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의 영화는 대사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언어음악으로 감상해야 하고 시각적 이미지네이션의 능력을 동시에 가동시켜야 하는 복합적 정신능력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당부한다.
『영화는 이래야 하는데가 아니고, 영화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자세로 봐주기 바란다. 그것은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이다. 나는 내용을 다른 방식, 새로운 표현형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어떤 영화를 구성하고 있을까. 선적인 세계, 혹은 모호한 시공간에서 벗어나 그는 다른 감독처럼 오늘날 우리의 현실 혹은 일상에 대해 발언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이 일상으로만 채워져 있진 않다. 우리는 꿈을 꾸고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음악에 빠져 든다. 그러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소망을 품고자 한다. 나는 현실의 묘사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주는 내 마음 속의 반향에 귀 기울이며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고자 한다. 나는 일상의 현실을 제자리에 두는 대신 나의 내부에서 재창조한 세계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그의 영화를 위해 관객은 다시 몇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좀 더 많은 작품을 찍겠다는 욕심은 절대 부리지 않는다. 혼자서 작업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회의를 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효율성과 생산성은 대량생산의 산업체제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시인은 흔히 한두편의 시를 남기기 위해 평생 시를 쓴다』
철저한 비타협의 정신이 일궈낸 절대적 창작의 자유. 그것이 우리에게 안겨준 유일하다시피한 작가주의 감독. 그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아도 우리는 의무적이라도 그를 지지해야 할 지 모른다.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언젠가 본듯한 ‘과거’로의 여정
알렉스 카우프만은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을 떠나 이국 땅을 헤메던 중년의 남성이다. 그는 40년이 지난 어느날 밤 해천이라는 곳에 도착해 고향의 기억을 더듬는다. 동굴같기도 하고 폐허같기도 한 여관에서 주인여자를 만나서 감나무가 있던 우물가, 혹은 영호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고향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려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배용균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과거로 떠난 것이다. 그것은 실존의 욕구로 당연하다. 그의 여정은 결국 우리 땅의 어두운 역사와 만나게 된다. 과거로 향한 그의 여정을 통해 나는 역사를 더듬어 상처를 치유·청산하고 또한 우리의 상실된 자기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으려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에서 감독은 역사의 원형을 복원해 내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역사는 이름으로 기억 속에 자리잡은 이미지와 감각이 얽혀있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기억이란 것은 우리를 역사의 진실로 이끌지 못한다. 때문에 그것을 찾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우리가 그 역사를 관용을 갖고 청산하느냐이다. 영화는 우리의 역사를 파헤치기보다는 역사에 대한 애도를 보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역시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헤메던 여인과의 긴 전화통화를 통해 기억에 대한 집념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사진으로 처리되는 주인공의 고향의 원형은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마지막 장면의 경우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와도 닮지 않은 장면을 만들고자 했다. 할리우드영화에 눈이 익어버린 일반관객에겐 충격을 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새로움을 통해 우리가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창조해 내고자 한다』 배감독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이윤정 기자>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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