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구제금융대가는 역시 크다. 예부터 「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IMF로부터 200여억달러를 빌리는 대신 우리나라는 국민경제 전부를 담보로 내놓은 것 같다.IMF처방은 강도높은 긴축과 시장경제체제의 조기구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기본합의서에서도 거시경제·재정정책·통화정책 등에서 긴축을 강조했다. 내년도 성장률을 3%로 축소하고 경상수지적자폭을 국내생산액(GDP)의 1% 수준으로 묶도록 했다. 또한 금융구조조정, 무역·자본시장개방, 기업지배구조 등에서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 경제구조를 환골탈태케 하는 혁명적인 대개혁(빅뱅)이요 개방이다. 이러한 내핍·개혁·개방아래 과연 우리 경제·금융·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크게 의문이다.
IMF가 세계적인 경제병의 명의인 것만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적인 체질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강도높은 처방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하버드대 국제개발원장) 교수는 시사주간지 타임에의 기고에서 『아시아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국제신뢰개선이지 정통적인 내핍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허리띠 조이기와 고금리를 요구하는 IMF의 전통적인 처방은 필요 이상으로 깊은 불황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IMF가 처음에는 성장률을 2.5%로 요구했다가 3%에 합의했다고 하는데 굳이 성장률을 이처럼 낮출 것을 고집한 이유는 뭣인가. 경제의 거품을 빼야 한다는데는 이의가 없다. 한국경제의 적정성장률은 약 6%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 절반 정도로 축소한 것은 지나친 것이다. 이에 따라 실업자가 현재의 배이상인 100만명을 초과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것이 엄청난 사회적 마찰을 야기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패한 처방이 되는 것이다.
IMF가 금융산업의 구조조정과 기업지배구조개선 등에서 요구한 개혁안들은 우리가 벌써 실현했어야 하는 것들이다.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무역·자본시장 개방에서 개방의 폭을 확대하고 시기를 대폭 앞당기도록 한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볼 수 있다. IMF에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 또한 일본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 은행에 대한 주식매입한도의 제한이 철폐됐다. 은행뿐 아니라 자동차·제철·반도체 등 어느 산업에서나 상장기업의 주식을 50%이상 차지할 수 있게 해놓았다. 우리 산업과 기업들은 채 경쟁력도 갖추기 전에 해외자본에 의해 인수·합병(M&A)이 가능하게 됐다. 1, 2년뒤에는 개방하게 돼 있는 것을 뭣 때문에 이렇게 앞당겼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기본합의서의 운영과정에서 IMF측이 신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미국의 유명실업인 존 웰치 GE회장은 『자신이 주인되지 않으면 남이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했다. 우리가 좌우명으로 삼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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